이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35
한자 李曙
영어공식명칭 Lee Seo
이칭/별칭 자양(子暘),월봉(月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0년연표보기 - 이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16년연표보기 - 이서 사망
성격 문인|효자
성별
본관 경주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세거하였던 조선 후기 효자이자 문인.

[개설]

이서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양(子暘), 호는 월봉(月峯)이다.

[가계]

이서의 증조할아버지는 가산군수를 지낸 이구서(李龜瑞)이며, 할아버지는 장예원(掌隷院) 사의(司議)를 지내고 사헌부 집의에 추증된 이즉(李鯽)이고, 아버지는 선공감 부봉사를 지내고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이대방(李大邦)이다. 청풍 김씨(淸風 金氏)와 혼인하여 5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유택(李惟澤), 이유부(李惟孚), 이유태(李惟泰), 이유익(李惟益), 이유겸(李惟謙)이다.

[활동 사항]

이서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에 걸렸을 떄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했고, 돌아가신 뒤에는 무덤 옆에 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일찍이 형을 따라 금산 지역에 머물렀는데, 향당에 머문 20여 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받지 않았다. 금산군 서일면[현재 금성면]에서 장례를 지냈다.

[학문과 저술]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금산군수로 재직할 때 이서의 시를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하였으며, 그 소문이 사계 김장생에게 전해져 이후에 칭찬하였다고 한다.

[묘소]

이서의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화림1리 서당말에 있는 버섯공장 뒷편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묘소에는 1664년에 송시열이 찬하고 송준길이 쓴 묘갈이 있으며, 1671년 아들인 이유태가 쓴 묘비도 있다.

[상훈과 추모]

이서는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