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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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潘南 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범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14년 - 박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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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58년 - 박린 사망 |
본관 | 반남 박씨 본관 -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
세거|집성지 | 반남 박씨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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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박응주(朴應珠) |
입향 시조 | 박린(朴麟) |
[정의]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반남 박씨(潘南 朴氏) 금산군 입향조는 박힐(朴詰)의 증손자로 진산군수를 지낸 박린(朴麟)[1414~1458]이다.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반남 박씨 집성촌이 있다.
[연원]
반남 박씨의 도시조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반남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의 6세손 박은(朴訔)[1370~1422]은 조선 태종(太宗) 때 반남군(潘南君), 반성군(潘城君)과 좌의정을 거쳐 금천 부원군(錦川 府院君)에 봉해지며 문중의 입지를 다졌다.
[입향 경위]
박린은 진산군수로 재임 중 단종(端宗)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벼슬을 사직하고 영월로 가려고 하자 아들 박희권(朴希權)이 뒤를 따르려 하였다. 그러나 마침 어머니가 병환이 들어 위독해지자 단념하고 진산에 거주하면서 후원에 단을 쌓고 곡을 하며 매년 10월 24일이면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충절이 알려지면서 주위에서 도연명(陶淵明)이 벼슬을 버리고 율리(栗里)로 돌아와서 숨어 살던 절개와 같다고 칭찬하였고, 박린의 충절을 드높이고자 그를 ‘의률(擬栗)’이라 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터를 잡고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금산군에 살고 있는 반남 박씨는 1,245명이다.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반남 박씨 집성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