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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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麟 |
영어공식명칭 | Park Lin |
이칭/별칭 | 의율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재영 |
출생 시기/일시 | 14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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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58년![]() |
묘소|단소 | 박린 묘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신촌리 검진산![]() |
사당|배향지 | 숭모사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길 158[마장리 840]![]()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반남 |
대표 관직 | 진산군수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거주하였던 조선 전기 문신.
[개설]
박린의 행적은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반남박씨삼세충의비(潘南朴氏三世忠義碑) 비문에 전한다.
[가계]
고려 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반남 박씨 박응주(朴應珠)의 후손이며 도소재(逃召齋) 박힐(朴詰)의 손자이다.
[활동 사항]
박린은 여러 군현의 수령을 지냈으며 잘 다스린 공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단종 초에 진산군(珍山郡)의 수령으로 임명되었는데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넘기자 벼슬을 내려놓았다. 박린은 장차 단종이 유배된 영월로 향하고자 하였으나 모친이 늙고 병이 심해져서 중지하였다. 이후 자취를 감추고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지냈으며 단종이 지은 자규사(子規詞)를 읊고 북쪽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후대 인사(人士)들은 도연명(陶淵明)이 율리(栗里)에 은거한 것에 비겨 박린의 시호를 의율(擬栗)이라 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신촌리의 검진산에 위치한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위치한 숭모사(崇慕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