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49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어필각로 197[외부리 436-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현덕사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1년 8월 16일연표보기 - 현덕사 금산군 향토유적 제21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현덕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현덕사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어필각로 197[외부리 436-9]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박종범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박흥생을 배향한 사당.

[개설]

현덕사는 조선 전기 문신 박흥생(朴興生)[1374~1446]을 배향한 사당이다. 박흥생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국당(菊堂)이다. 여흥부교수(驪興府敎授)와 춘천부교수(春川府敎授)를 지냈고, 1423년(세종 5)에 평창현령(平昌縣令)을 제수받았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33권 휴일(休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박흥생은 일찍부터 문장을 업(業)으로 삼았다. 13세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7세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더불어 의정(議政) 김훈(金訓)과 사인(舍人) 서호(徐皥), 사촌 동생인 난계(蘭溪) 박연(朴堧)과 왕래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또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김자수가 영민하다 칭찬하였고, 목은(牧隱) 이색(李穡) 역시 매우 인정하였다. 1423년(세종 5) 창평현령(昌平縣令)에 임명되었는데, 너그럽게 백성을 대하고 청렴과 엄격함으로 자신을 단속하였으며, 옥송(獄訟)을 분명하고 신중하게 처리하여 감사(監司) 성억(成抑)과 조계생(趙啓生)이 모두 도내(道內)에서 처리하기 곤란한 일을 박흥생에게 돌렸다. 또 인근에 사는 권천(權踐)과 민심언(閔審言)도 그 명신(明信)함에 탄복하면서 자신들은 미칠 수 없다고 여겼다.

이듬해에 상(喪)을 당한 박흥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영동으로 돌아와 아우 감찰(監察) 박흥거(朴興居)와 거상(居喪)하면서 예(禮)를 극진히 하였다. 또 산수(山水) 사이에 집을 지어 놓고 서로 더불어 즐겼으므로 서사인(徐舍人)이 ‘이락(二樂)’이라 편액하였다. 박흥생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이 박흥생은 효행이 지극하여 정려(旌閭)를 받았고, 학행과 문장 또한 뛰어나 당시 거유(巨儒) 목은 이색과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이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려 칭찬하였다고 한다. 대표 저서로 『촬요신서(撮要新書)』와 한시(漢詩) 10여 편이 전한다.

[위치]

현덕사금산군 군북면 외부리 436-9번지에 있다.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 버스 정류장에서 북쪽으로 180m 정도 간 후 좌측으로 40m 정도 가면 사당을 만날 수 있다.

[변천]

현덕사는 1980년에 건립되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 건물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현덕사는 2011년 8월 16일에 금산군 향토유적 제21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 삭제]되었으며, 소유자는 박종범이다. 밀양 박씨(密陽 朴氏)의 문중 사당으로, 후손들에 의해 정비가 잘되어 있으며 이중으로 설치된 문으로 보호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4일에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현덕사박흥생의 공적을 보여 주는 사당이다.

[참고문헌]
  • 금산군청 문화관광(https://www.geumsan.go.kr/tou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