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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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興生 |
영어공식명칭 | Park Heungsaeng |
이칭/별칭 | 경부,국당,국은,춘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재영 |
출생 시기/일시 | 13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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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86년 - 박흥생 진사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390년 - 박흥생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423년 - 박흥생 창평현령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446년![]() |
추모 시기/일시 | 1697년 - 박흥생 화암서원 배향 |
묘소|단소 | 국당 박흥생 선생 묘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52-1번지 |
사당|배향지 | 화암서원 -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 |
사당|배향지 | 현덕사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 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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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관직 | 창평현령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현덕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박흥생의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경부(敬夫), 호는 국당(菊堂)·국은(鞠隱)·춘곡(春谷)이다. 할아버지는 성균직강(成均直講)을 지낸 뒤 찬성에 추증된 박시용(朴時庸)이고 아버지는 검한성윤(檢漢城尹) 박천귀(朴天貴)이다. 어머니는 옥천 육씨 육신우(陸臣佑)의 딸이다. 첫번째 부인은 충주 양씨 양숙(梁肅)의 딸이고 두번째 부인은 재령 강씨 강희(康熙)의 딸이다.
[활동 사항]
1374년 출생하여 1386년 13세의 나이로 고려의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세에 고려의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문과에는 끝내 합격하지 못하였으나 김훈(金訓), 서호(徐皥) 및 종제(從弟) 박연(朴堧)과 학문을 닦았다. 김자수(金自粹)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영민하다는 칭찬을 받았고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박흥생을 인정하였다. 이색의 추천으로 여흥(驪興)과 춘천(春川)에서 교수(敎授)를 지냈는데, 가르침이 상세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원근에서 유학자들이 소문을 듣고 오는 자가 많았다.
1423년 창평현령에 임명되어 청렴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단속하고 옥송(獄訟)을 분명하면서도 신중하게 처리하여 감사(監司) 성억(成抑)과 조계생(趙啓生)이 도내에서 발생하는 곤란한 일을 박흥생에게 맡겼다. 1424년 상(喪)을 당해 고향 영동[충청북도 영동군]으로 돌아가 아우 박흥거(朴興居)와 예를 다하여 거상(居喪)하였다. 1446년 73세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는 사람의 출생부터 사망, 장례, 제사 그리고 농사 등 일상 생활과 관계되는 일을 서술한 일종의 가종지침서인 『촬요신서(撮要新書)』가 있다. 문집으로는 『국당유고(菊堂遺稿)』가 전하는데 후손 박희석(朴禧錫)이 박흥생의 시문을 교감하여 일족과 의논하여 1828년에 활자로 간행하였다. 현재 1828년에 나온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1895년 후손 박중호(朴重浩)가 중간한 판본이 전해진다. 문집은 본집 2권, 부록 1권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52-1번지에 위치한다. 박흥생 묘비는 1683년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남구만(南九萬)이 썼으며 1993년 충청북도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 건립된 현덕사가 박흥생을 배향한 사우이다. 박흥생의 현덕사 배향은 박흥생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금산군에 거주하였던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환여승람』 여행(女行)조에는 박흥생의 후손인 참봉 박봉서(朴鳳瑞)의 딸이 실려 있으며 효자(孝子)조에는 박흥생의 후손 박내열(朴來烈)이 수록되어 있다. 같은 책의 단사(壇社)조에는 박흥생의 후손 박용하(朴瑢夏)가 1931년 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음이 기록되어 있다. 1697년 영동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추가로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