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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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精忠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삼태2길 33-1[마장리 668-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기훈 |
건립 시기/일시 | 193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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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0년 - 정충사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8월 16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충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정충사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삼태2길 33-1[마장리 668-1]![]() |
성격 | 사당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개설]
정충사(精忠祠)는 금산군 남일면의 삼태부락 동백산에 있는 사우로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을 지키다 전사한 충신 양제(梁濟)[1550~1593]를 배향한 사당이다. 양제는 남원 사람으로 자는 제부(濟夫), 호는 송제(松濟)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을 토벌하고 진주성에서 왜적을 토벌하는 전적을 세웠다. 그러나 왜적의 최후 공격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이에 격분하여 촉석루(矗石樓)에서 남강으로 투신 자결하였다. 경상병사 최진한이 1722년(경종 2)과 1726년(영조 2)에 포증(褒贈)을 요청하였고, 1740년(영조 16)에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다시 포증을 요청하였다. 이후 1743년(영조 19) 영의정 김재로(金在魯)가 경연석상에 주청하자 영조가 양제에게 호조좌랑을 내렸고, 충민사(忠愍祠)와 창렬사에 배향하도록 명하였다.
[위치]
정충사는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668-1번지에 있다. 바로 옆에 남원 양씨 밀직공파 제각이 자리하고 있고, 약 500m 떨어진 곳에 삼태리경로당[도보로 7분 정도 소요]이 있다. 약 400m 거리에는 도보로 5분 정도 소요되는 삼태리버스정류장이 있으며, 버스는 335번과 501번이 정차한다.
[변천]
1926년 금산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정충대의(精忠大義)’ 비석을 세웠고, 1936년에 재실을 지었으며, 이듬해인 1937년에 정충사를 건립하였다. 1960년에 정충당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1980년에 중건하였다. 2000년 3월 14일에는 양제의 행적을 담은 비석을 추가로 세웠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 교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맞배지붕은 주로 서원의 사당이나 화랑, 행랑채 등에 사용되는 양식이다. 정충사 앞에는 1937년에 임양재(任良宰)가 짓고 임감재(任坎宰)가 쓴 정충사 유허비[너비 59㎝, 폭 42㎝, 높이 59㎝]가 있는데, 비의 전면에 ‘정충대의’라고 써 있다.
[현황]
정충사는 2011년 8월 16일에 금산군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지방 유림에서 매년 음력 8월 12일에 추향제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