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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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韓氏 旌閭閣 |
영어공식명칭 | Cheongju Han Clan Jeongryeogak |
이칭/별칭 | 효부 강라영 처 청주 한씨 정려각(孝婦 姜羅永 妻 淸州 韓氏 旌閭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하마전1길 13[마전리 406-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기훈 |
건립 시기/일시 | 19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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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0년대 - 청주 한씨 정려각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8월 16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한씨 정려각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청주 한씨 정려각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하마전1길 13[마전리 406-1]![]() |
원소재지 | 청주 한씨 정려각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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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려각 |
양식 |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강세구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개설]
청주 한씨 정려각(淸州 韓氏 旌閭閣)은 조선 후기 효부인 강라영(姜羅永)[1822~1885] 처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정려각이다. 정부인 한씨는 한사의(韓師義)의 딸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가 병석에 눕자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구걸하며 생계를 이어 나간 효녀였다. 진주강공의 강서근(姜瑞釿)의 아들 강라영과 혼인하여 공경과 예로써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었고, 청주 한씨의 효행은 세상의 모범이 되었다. 청주 한씨가 54세의 나이로 죽자 향리의 유생들이 고종에게 상주하여, 1892년(고종 29)에 명정(命旌)이 내려졌다.
[위치]
청주 한씨 정려각은 원래 금산군 추부면의 마전리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으나, 도로가 개설되면서 현재 자리인 마전리 406-1번지로 옮겨졌다. 추부중학교 들어가는 정문 앞에 자리한다.
[변천]
1908년(순종 2)에 손자 강형대(姜亨大)가 청주 한씨 정려각을 건립하고 정려기를 지었다. 1970년대에 금산군의 지원으로 한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와가이며, 건평은 9.92㎡[3평]이다. 사면이 홍살이며, 정려 주변에 시멘트로 만든 담장이 둘러져 있다. 정려 내부에는 1892년 명정 사실을 기록한 현판 ‘효부 증가선대부 예조참판 강라영처 증정부인청주한씨지려(孝婦 贈嘉善大夫 禮曹參判 姜羅永妻 贈貞夫人淸州韓氏之閭)’와 1917년 후손 강형대가 쓴 ‘조모정부인한씨정려기(祖母貞夫人韓氏旌閭記)’가 걸려 있다.
[현황]
청주 한씨 정려각은 2011년 8월 16일에 금산군 향토유적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소유자는 강세구이다. 정려각은 낮은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담장 위에 철조망이 둘러져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정려각에 들어갈 수 있는 문 앞에 설명이 적힌 간판이 있어 정려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