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62 |
---|---|
한자 | 壬辰倭亂 |
영어공식명칭 | Japanese Invasion of Chosun in Year Imj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규완 |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침략으로 충청남도 금산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개설]
금산 지역은 전라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라도를 점령하고자 하는 왜군과 이를 방어하고자 하는 조선군 및 의병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조선군 및 의병은 금산 일대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여 전라도를 방어하였고, 결국 왜군으로 하여금 영남 지역으로 철수하게 하였다.
[역사적 배경]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전쟁에서 빠르게 승리하기 위해 한양으로 곧장 진격하여 조선 국왕을 사로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도성인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가고, 명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길어지게 되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군은 현지에서 군량과 물자를 조달하고 조선 전역을 점령하기 위해 각 지역에 부대를 파견하였다. 금산은 전라도로 향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고자 하는 조선과 전라도를 공격하고자 하는 왜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왜군 중 전라도를 점령하고자 했던 것은 제6군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 휘하의 군대였다. 전라도를 점령하고자 하는 왜군 제6군과 이를 방어하고자 하는 조선군은 금산에서 이치대첩, 제1, 2차 금산 전투를 벌였다.
[경과]
이치대첩은 금산을 거쳐 전라도로 침입하려는 왜군을 금산의 이치(梨峙)에서 권율이 맞서 싸워 이긴 전투이다. 왜군은 전라도로 진입하기 위해 저곡산(猪谷山)에 진을 치고 있던 금산군수 권종(權悰)을 공격하여 금산성을 점령하였다. 왜군은 금산에서 우회하여 진안의 웅치(熊峙)를 통해 전라도로 진입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자, 이치(梨峙)를 넘어 전주를 침입하고자 했다. 이 전투에서 전라도도절제사(全羅道都節制使) 권율(權慄)은 왜군을 패퇴시키고 전라도 지역을 지킬 수 있었다.
제1차 금산 전투는 1592년 7월 9일~10일까지 고경명의 의병부대 6,000여 명과 금산에 주둔하던 왜군 고바야카와 부대와의 전투였다. 고경명 의병부대가 은진에 이르렀을 때 금산의 왜군이 전주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고경명은 전라도를 방어하기 위해 호서의병장 조헌과 전라방어사의 군대와 합세하여 금산성을 공격했다. 7월 10일 전라방어사군은 금산성의 북문을, 의병은 서문을 공격하였으나 왜군의 반격으로 패전하게 되었다. 제1차 금산 전투는 조선군의 패배로 종결되었으나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고경명의 죽음은 호남 지역의 의병활동을 촉발했고, 전투로 인해 왜군의 전력을 약화시켜 활동을 위축시켰다. 결과적으로 제1차 금산 전투는 호남 방어에 중요한 전투였다.
제2차 금산 전투는 1592년 8월 17일~18일까지 의병장 조헌(趙憲)이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였다. 조헌은 당초 전라도순찰사(全羅道巡察使) 권율과 함께 금산을 공격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이를 변경하고자 하는 권율의 서신을 받지 못한 채 금산으로 향하였다. 조헌은 금산 10리 밖까지 도달하여 전라도 관군을 기다렸으나 군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너무 가까이 진을 치고 있다가 왜군의 공격을 받았다. 왜군은 후속의 군사가 없으며, 군영이 미비한 점을 간파하고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공격으로 조헌이 죽자 의병들은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왜군도 조헌의 의병군을 기습했으나, 그들도 유리한 수성전(守城戰)이 아니라 평지에서 싸웠기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죽게 되었다. 결국 이 전투로 왜군의 군세(軍勢)가 크게 꺾여 경상도로 철수하게 되었다. 제2차 금산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손실한 왜군은 금산과 무주 지역에서 후퇴하여 영남 지역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결과]
임진왜란 시기 금산에서 벌어졌던 전투로, 왜군으로부터 곡창지대이자 병력의 공급원이었던 전라도를 방어할 수 있었고, 결국 왜군으로 하여금 영남 지역으로 철수하게 만들었다.
[관련 유적]
임진왜란 시기 왜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금산에는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임진왜란 시기 금산으로 진격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군수 권종이 쌓았다는 저곡리 산성, 임진왜란 시기 금산에서 순국한 조헌, 영규대사, 고경명 등을 모시고 있는 종용사(從容祠), 조헌을 모신 조헌사당[표충사(表忠祠)], 금산을 점거한 왜군과 싸우다 죽은 700의사를 모신 칠백의총(七百義塚), 임진왜란 때 전사한 조여충(趙汝忠), 권혁(權爀), 정인조(鄭仁祚) 등의 묘, 칠백의총 중봉 조헌 일군 순의비(七百義塚 重峰 趙憲 一軍 殉義碑), 고경명순절비(高敬命殉節碑), 권종을 기린 비석인 권충민공순절비(權忠愍公殉節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