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59
한자 官衙
영어공식명칭 A Local Government Office
이칭/별칭 동헌(東軒),아사(衙舍),공해(公廨)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규완

[정의]

조선 시대 충청남도 금산 지역의 지방 행정과 문화 거점이 되었던 시설.

[개설]

조선 시대 현 충청남도 금산군에는 금산군(錦山郡)진산군(珍山郡) 두 고을이 있었다. 따라서 관아도 2개의 관아가 각 군별로 존재하였다.

[관아의 구조와 성격]

고려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중앙집권화 정책은 조선 시대에 형식적으로 완비되었다. 읍치를 중심으로 자연 촌락이 포함된 면(面)을 포괄하여 자치적으로 지방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방은 그 규모에 따라 부(府), 목(牧), 군(郡), 현(縣) 등으로 구별되었다. 관직도 정교하게 정비되어 외관직이 모든 고을에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파견 관원은 목민관인 수령 뿐만 아니라 지역 규모에 따라 훈도, 교관 등 향촌 교화를 담당한 관원도 있었다. 이들 관원들은 관아에서 머물며 각종 행정과 교육, 문화, 군사, 정치 등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관아는 지방권력의 거점공간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관아는 조선 시대 거의 모든 군현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정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규모에는 차이가 있지만, 관아는 공간적으로 동헌(東軒)과 서헌(西軒)으로 구분되었다. 동헌은 관찰사, 수령 등이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었고, 서헌은 관찰사나 수령의 생활공간에 해당하였다. 넓은 의미에서는 관아에 창고, 감옥, 객사 등이 포함되기도 하였는데, 좁은 의미로는 객사는 제외하고 공식적인 업무 공간인 동헌만을 관아로 가리키는 경우도 많았다.

[금산의 관아]

금산군 관아는 객관(客館), 아사(衙舍), 향사당(鄕社堂), 훈련청(訓鍊廳), 군기고(軍器庫)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진산군 관아는 객사, 아사, 향사당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지역 모두 조선 전기에는 군수와 훈도가 파견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군수만 파견되었다. 금산군진산군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산군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 동안 관아는 두 개의 군에 각각 존재하였다. 현재 두 관아 모두 존재하지 않으나, 지명, 사진 등의 흔적은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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