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잉을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35
한자 進仍乙郡
영어공식명칭 Jiningeul-gun
이칭/별칭 진내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유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진잉을군에서 진례군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1305년 - 진례현 금주군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413년 - 금주군에서 금산군으로 개칭
관할 지역 진잉을군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일대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일대에 편제된 백제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진잉을군(進仍乙郡)은 백제 시대 금산 지역 관할을 위해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백제 사비기 완비된 지방 통치 체제는 방·군·성(方·郡·城)제이며, 진잉을군두시이현(豆尸伊縣), 물거현(勿居縣), 적천현(赤川縣) 총 3개의 영현을 거느렸다. 진잉을군은 오늘날 금산군 금산읍 일대로 비정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 사비기 지방 통치 제도인 방·군·성제가 실시되면서, 금산 지역 또한 두시이현, 물거현, 적천현을 거느린 진잉을군으로 편제되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6 잡지에 따르면, “진례군(進禮郡)은 본래 백제 진잉을군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영현(領縣)이 셋이다. 이성현(伊城縣)은 본래 백제 두시이현(豆尸伊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부리현(富利縣)이다. 청거현(淸渠縣)은 본래 백제 물거현(勿居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단천현(丹川縣)은 본래 백제 적천현(赤川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주계현(朱溪縣)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국사기』 권37 잡지 완산주의 군현에 대한 기록에서는 “…진내군(進乃郡)[한편 진잉을(進仍乙)이라고도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잉을의 별칭 혹은 이칭이 진내군임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지리지 권제11 지리 2에는 “본래 백제의 진내군(進乃郡)[진잉을현(進仍乙縣)이라고도 함]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진례군(進禮郡)으로 고쳤으나 고려에 들어 현령관으로 강등시켰다. 충렬왕 31년(1305)에, 이 고을 사람 김신(金侁)이 원나라에 벼슬해 요양행성(遼陽行省)의 참정(參政)이 되어 나라에 공이 있다 하여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시켰다. 속현이 5개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외에도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금산군읍지』, 『대동지지』 등에서 두시이현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진잉을군은 백제 시대 금산 지역의 관할을 위해 설치한 행정조직이다. 금산 지역이 진잉을군으로 편제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백제의 지방통치체제인 방·군·성제[전국을 방으로 구획하고, 방 아래 군을 설치하고, 다시 군 아래에 성을 편제시키는 제도]의 실시는 사비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때 금산 지역에도 진잉을군의 편제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잉을군이 거느린 3개의 영현으로는 두시이현과 물거현, 적천현이 있다.

진잉을군은 오늘날 금산읍 일대로 비정된다. 두시이현은 금산 지역의 부리면 일대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부남면 일대로 비정된다. 진잉을군의 또다른 영현 물거현과 적천현은 각각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담면 일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따라서 백제 시대 진잉을군과 그 영현은 오늘날 금산과 무주, 진안 등의 일부 지역과 함께 편제된 것을 알 수 있다.

[변천]

백제 시대에는 진잉을군이었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진례군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에 진잉을군의 영현인 두시이현과 물거현, 적천현도 각각 이성현, 청거현, 단천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 때에는 진례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05년(충렬왕 31), 고을 사람 김신(金侁)이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그 공을 인정하여 그를 지금주사(知錦州事)에 임명하고, 진례현을 금주군(錦州郡)으로 승격시켰다. 1413년(태종 13), 금주군은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금산군’ 지명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고대 금산 지역에 편제된 지방 통치 체제와 변천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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