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 시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33
한자 鐵器 時代
이칭/별칭 삼한 시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윤성호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역사 시대가 시작하는 초기 철기 시대 혹은 삼한 시대의 역사.

[개설]

금산 지역은 금강 상류와 지류에서 수계가 발달하였는데, 대체로 산지에 위치하지만 수계 주변의 충적지에서는 교통로와 농경이 발달하였다. 특히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서와 남북으로 연결되는 교통로는 역사가 시작하는 시기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유적 중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주목되는 곳은 금산 창평리 유적과 마전리 유적이다.

[금산 지역의 철기 시대의 유적 현황과 성격]

금산 창평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에 걸친 다양한 유적들이 조사되었다. 이 중 초기 철기 시대 주거지 유적은 장방형이나 말각방형의 주거지 65기가 중복된 상태로 조사되었다. 주거지 내부에서 외줄 구들이 있는 유구도 확인되었고 장란형 토기, 바리토기, 주구토기, 시루, 완 등 거주인들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도 출토되었다. 또한 주거지 유적과 함께 토기요 1기도 확인되었다. 요지는 이 보다 늦은 시기에 조성된 구상유구로 인하여 소성실이 훼손된 상태이나 내부의 목탄 시료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주거지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기타 굴립주건물지 3동, 수혈유구 58기, 구사유구 4기, 주공군 등의 다양한 유구도 확인되었다. 즉, 창평리 유적을 통하여 금산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문화상을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금산 마전리 유적에서는 2개의 장란형 토기를 안치한 옹관묘도 확인되어 초기 철기 시대 매장 문화를 이해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금산 지역은 선사 시대 이후로 사람이 거주하기에 양호한 상황이며, 문화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초기 철기 시대에는 권력을 장악한 소국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곳에 마한과 관련된 정치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어떠한 소국이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금산 수당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구가 확인됨과 동시에 5세기 초를 전후한 백제 석곽묘가 확인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제 석곽묘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하여 중앙에서 사여된 것으로 판단되는 흑갈유도기편과 환두대도, 살포 등의 무기와 농기구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금산 수당리 유적을 통하여 청동기 시대 이후로 백제 시기에는 금산 지역에 유력한 재지 세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 철기 시대에 이미 금산 지역에서 이러한 유력한 재지 세력이 정치체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점을 유추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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