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실나루전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219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닥실나루전설」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1년 - 「닥실나루전설」 『금산군지』2권에 수록
관련 지명 닥실나루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투 패배담
주요 등장 인물 권종|여인
모티프 유형 여인의 한|패배한 전투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에서 금산군수 권종닥실나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닥실나루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금강 변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군수 권종(權悰)과 그의 아들, 200여 명의 의병이 닥실나루에서 왜적에게 크게 패해 모두 목숨을 잃었다. 현재 닥실나루 근처에 권종의 유허비[추모비]가 있다.

[채록/수집 상황]

「닥실나루전설」은 1992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최문휘의 『여기가 금산이다』와 2011년 금산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금산군지』2권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가 금산이다』는 설화 내용에 저자의 주관적 윤색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임진왜란 당시 금산군수였던 권종은 전쟁이 일어나자 왜적과의 싸움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권종은 자신이 모은 의병들을 이끌고 닥실나루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여인이 의병들의 행렬 사이로 끼어들더니 행군보다 앞서서 걸어 나갔다. 병사들은 “여자가 재수 없게 싸움터에 나가는 부대 앞을 지나가다니!” 하며 크게 노했다. 나쁜 징조라며 진군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 권종이 칼을 빼 들고 내리치려다가 여인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여인은 젊은 시절의 권종을 짝사랑하다가 자결한 처녀였기 때문이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이 길은 가면 아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권종은 망설임 없이 단호한 태도로 칼을 힘껏 휘둘렀다. 순간, 여인은 사라졌다. 권종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군사들을 이끌고 저곡산으로 가서 왜적을 치기 위한 진을 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다음날 왜적이 닥실나루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듣고 군사를 금강 상류로 보냈다. 왜적들이 물 깊이를 알지 못하도록 강 상류에서 흙탕물을 흘려보내는 위장술을 쓰면서 적의 침범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왜군이 나루터에 도착한 바로 그때 바구니를 머리에 인 한 여인이 나타나 치맛자락을 휘어잡으며 유유히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이를 본 왜군은 강물이 깊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 곧바로 강을 건넜고 하루 만에 저곡산과 금산성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 여인은 권종을 짝사랑하다가 자결한 여인의 영혼이었다고 한다. 결국 권종과 그가 이끈 의병들은 닥실나루 전투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 닥실나루 전투의 패배 원인은 권종을 짝사랑한 여인의 원한 때문인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모티프 분석]

「닥실나루전설」은 우리나라 전통 속담 중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과 금산군수 권종의 전투 패배담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전설이다. 권종을 짝사랑한 여인이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해 자결을 하게 되었으며, 영혼이 되어서 전한 걱정과 염려의 마음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원한을 품고 권종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닥실나루전설」권종의 죽음과 전쟁 패배의 원인을 현실적인 시대 상황과 연관시키지 않고 여인의 한(恨)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남자가 가는 길을 여자가 막아서면 재수가 없다’는 속담과 같은 종류의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적 사고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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