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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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女子 冤鬼 - 趙重峯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희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9년 2월 4일 - 「여자 원귀 때문에 죽은 조중봉」 박영찬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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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여자 원귀 때문에 죽은 조중봉」 웹사이트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 |
채록지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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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전쟁 패배담 |
주요 등장 인물 | 조중봉|백정|여인 |
모티프 유형 | 여자의 한|패배한 전쟁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에서 중봉 조헌의 죽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전사한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가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에 전한다. 조중봉의 죽음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내용이 담겨 있다.
[채록/수집 상황]
「여자 원귀 때문에 죽은 조중봉」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작한 웹사이트 한국구비문학대계에 그 내용이 음성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9년 2월 4일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주민 박영찬이 제보한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내용]
조선 중기의 학자 조헌의 호는 중봉이다. 그는 젊은 시절 대둔산 청림사에서 공부한 적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금산 전투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전사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중봉이 금산에서 의병들과 항전 중일 때 한 백정이 찾아왔다. 그 백정은 천민 신분이었지만 언행은 학자 못지 않게 반듯했다. 백정은 조중봉에게 원한 맺힌 여인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조중봉은 한때 자신을 사랑한 한 여인을 배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백정은 조중봉에게 ‘당신은 여자 때문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돌아갔다.
얼마 후 조중봉은 왜적과의 싸움에서 금강 상류에 흙탕물을 뿌려 놓고 왜군이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위장 전술을 펼쳐 놓은 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한 여인이 유유히 걸어서 강을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 여인이 왜적들에게 강물의 깊이가 깊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준 셈이 되었다. 곧바로 강을 쉽게 건너온 왜적에 의해 산성은 바로 함락되고 말았다. 결국 조중봉은 1592년 8월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백정의 예언대로 조중봉은 여인의 원귀 때문에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모티프 분석]
「여자 원귀 때문에 죽은 조중봉」의 주요 모티프는 ‘여자의 한’과 ‘패배한 전쟁’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과 금산군수 권종(權綜)의 닥실나루 전투 패배담이 결합, 변이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금산과 관련성이 매우 높은 실제 역사적 인물을 전설의 주인공으로 하여 전쟁 패배의 원인을 여인의 원귀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