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68
한자 金蘭稧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1년 3월연표보기 - 금란계 조직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서 용강서원에 출입했던 유림의 후예가 조직한 계.

[개설]

용강서원(龍江書院)은 1716년(숙종 42)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 건립된 노론계 서원이다. 건립 당시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유계(兪棨) 3인을 배향했다가 김원행(金元行)송명흠(宋明欽)이 추배되었다. 1871년 서원훼철령으로 강당만 남아 서당으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당시 용강서원에 적극 참여한 유림은 서원의 전답을 기반으로 용강서당계(龍江書堂稧)를 조직하였다. 일제 강점기 그 후손의 일부가 금란계(金蘭稧)를 구성하였다.

[내용]

금란계는 1921년 3월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와 그 주변에 거주하는 선비들이 조직한 시계(詩契)이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시문(詩文)을 통해 교유하며 친목을 도모하였다. 계원 명부에는 14인의 본관, 자, 호, 생년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계를 주도한 죽파(竹坡) 김병후는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죽전촌에서 은거하여 학문에 정진한 청렴한 선비로 알려져 있다. 생전의 죽파는 금산읍으로 외유한 것이 4~5회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생을 초야에 묻혀 살았다고 한다. 금란계의 자취는 1921년 용강서원 터에 건립한 금란계 기념비와 『금란계시집』 두 권이다. 제1권은 한시 200여 수, 제2권은 칠언절구 28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현황]

금란계는 광복 직후 해체되었다. 구성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친목계의 성격을 띤 조직은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특징 및 의의]

금란계는 일제 강점기 금산 지역 지식인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계원 14인 가운데 8인은 1934년 금산의 유림이 망라된 ‘금산향약(錦山鄕約)’에 참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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