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42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매년 논매기를 위해 조직되는 마을의 공동 노동 조직.

[개설]

금산 지역의 두레는 모내기를 마치고 나서 지심[잡초]이 올라오는 시기에 조직되는 한시적인 노동 조직이다. 모내기에 두레가 동원되는 경우는 없었다. 과거 논농사는 비료와 논매기가 중요하였다. 특히 제초 작업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시에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노동력 확보를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한 지혜의 소산이 바로 두레였다.

[연원 및 전승 양상]

두레는 이앙법이 보편화되는 조선 후기의 산물이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금산에서는 생활문화를 공유하는 마을 단위로 두레가 조직되었다. 금산 지역의 두레는 구성원들의 의무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두레가 나면 호당 한 사람의 일꾼을 내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었다. 다만 출역(出役)은 의무적이되 두레는 신청한 농가의 논만 대상으로 하였다. 따라서 빈촌의 경우 두레로 논을 매는 농가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논농사가 적은 소작인은 굳이 두레를 동원할 필요 없이 호락질[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족끼리 농사를 짓는 일]로 얼마든지 논매기가 가능한 까닭이다. 또한 두레의 논매기는 초벌매기와 두벌매기 2회에 국한되었다. 두레로는 다 맬 수도 있고 한 번만 맬 수도 있다. 이는 금산과 인접한 산간 지역에서 종종 포착되는 두레의 양상이다. 논을 매는 방식은 초벌매기와 두벌매기 모두 호미를 썼다.

[두레의 역원]

두레의 역원은 좌상(座上)·공원(公員)·문서(文書)·총각대방 등이 있다. 좌상은 영좌 또는 공원좌상으로도 불린다. 두레의 총책임자로서 마을에서 덕망이 있고 농사의 경험이 풍부한 유력자를 추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원은 좌상을 보좌하여 논매기를 진두지휘하는 일종의 작업반장이다. 이밖에 문서는 그날그날 작업 현황과 품값을 장부에 기록하는 역원이고, 총각대방은 장가를 들지 않은 일꾼들을 통솔하는 노총각이다. 그런데 금산 지역의 경우 역원을 따로 선정하지 않고 구장[이장]이 두레를 주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두레의 논매기]

모내기를 마치고 20~25일이 지나면 모포기 사이로 잡초가 돋아난다. 이즈음에 마을에서는 두레를 조직하여 논매기에 들어간다.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 두레의 경우 아침에 징을 울려 집결 신호를 보낸다. 첫 두레가 나면 농기(農旗)에 간단하게 잔을 올린 다음 일터로 향한다. 영기(令旗)가 앞장서고 그 뒤에 농기와 풍물 그리고 두레꾼들이 장사진을 친다. 논에 도착하면 농기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논매기에 들어간다. 이때 농사의 경험이 풍부한 속칭 ‘벼루잡이’가 논두렁 옆에 붙어서 논매기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그래야 일꾼들이 서로 얽히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벼루잡이가 일꾼들을 몰아갈 때는 “잘매자 우루루”라고 독려한다. 또 구성진 선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흥겹게 논을 맨다.

[특징 및 의의]

두레는 열악한 농사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상부상조의 본보기이다. 금산은 평야 지역에 비해 두레의 전통이 다소 미약한 편이다. 논매기를 마친 뒤 두레먹이[호미씻이]를 베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밭농사 중심의 산간 지역이라는 환경과 더불어 송계(松契)의 ‘초장길닦기’와 같은 특유의 전통이 두레의 호미씻이를 대신한 측면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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