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걸립굿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12
이칭/별칭 배묻이굿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나룻배 건조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행하는 걸립굿.

[개설]

금산을 지나는 금강 상류의 물줄기에는 10여 개의 나루가 운영되었다. 무주와 경계를 이루는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의 방우리나루·농원나루·수통나루·도파나루·신촌나루,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의 용화나루·닥실나루·천내나루·광석나루 등이다. 나룻배는 나무로 제작한 거룻배이다. 5~6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여 주기적으로 새로운 배를 건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배걸립굿’ 또는 ‘배묻이굿’을 한다.

[연원 및 변천]

배걸립굿의 연원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지역 사회에서 나루가 형성되는 시기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나루를 중심으로 배걸립이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강 상류의 배걸립굿은 육상 교통의 발달 및 교량의 축조로 1970년대 이전에 소멸되었다.

[절차]

금산의 나루는 마을에서 배를 건조하여 전담 사공을 두고 운영하였다. 각각의 나루는 오일장을 왕래하거나 농사를 짓는 등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해 나룻배가 긴요하였다. 작은 나루는 마을 자체적으로 건조 비용을 충당하지만,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나루는 주변 마을을 포괄하는 걸립을 통해 비용을 마련하였다.

배걸립굿의 치배는 쇠[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벅구], 새납 등으로 편성되는 것이 보통이고, 잡색은 포수, 양반, 무동[꽃나비·중나비] 등이 있다. 그 절차는 여느 걸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걸립패가 집 안으로 들어서면 문굿-마당밟이-정지굿-터주굿 등으로 축원해 준다. 그 집에서는 성의껏 전곡을 내주고 주연을 베푼다. 또 숙식을 제공받고 하룻밤을 묵는 경우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온 마을 사람이 운집한 합굿을 치고 놀았다.

[방우리나루 배걸립굿]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에는 모두 세 개의 나루터가 있는데, 3면이 강물로 에워싸여 있어 농사를 짓거나 외지의 왕래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여러 개의 나루를 운용하였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풍물패들이 가가호호를 돌아 축원을 해주고 전곡을 거두었고, 특별히 배를 건조하는 해에는 이웃 마을로 배걸립굿을 나갔다. 대상 지역은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와 인접한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도파마을, 부리면 어재리 압수골 등이다. 걸립패는 꽹과리[상쇠·부쇠]-징-장구-북[법고 4~5명]-포수-무동으로 편성되었다. 상대 마을에 기별을 띄워 허락이 떨어지면 동네 이장이나 유력자 등 몇 집을 선정하여 걸립에 들어간다. 순서는 문굿-마당밟이-정지굿-터주굿 등이다. 거리가 먼 지역은 그 마을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하룻밤을 묵었다. 저녁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동네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상대 마을 풍물패와 함께 늦도록 풍장을 치며 놀았다.

[도파나루 배걸립굿]

도파나루는 10여 마을의 화목산지를 잇는 길목이다. 강물 건너에는 송계산이 있어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평촌리, 수통리 도파, 평촌리 수촌, 예미리 승재, 어재리 압수골, 방우리 및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굴천이가 가입되어 있었다. 따라서 여러 마을의 나무꾼들은 도파나루를 경유하여 땔나무를 운반할 수 있었다. 또 송계산 초입에는 ‘초원길’이라 불리는 마당재가 위치하여 무주 방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금산을 오고 가는 지름길이 되었으며, 길손들 역시 도파나루를 이용하였다. 나룻배는 보통 5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다. 필요한 재원은 매년 정초에 주변 마을로 걸립을 나가 전곡을 거출하고, 이를 장리(長利)로 이자를 놓아 기금을 증식하였다.

[천내나루 배걸립굿]

천내나루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에서 강을 건너 제원역(濟原驛)을 거쳐 금산에 이르는 길목이다. 금강 상류의 나루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조선 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제원역의 역로에 나루터가 위치하기 때문이었다. 걸립패는 마을에서 솜씨 있는 사람으로 꾸리되 외부에서 출중한 치배들을 영입하였다. 이를 위해 소문난 풍물꾼을 불러들여 주연을 베풀며 실력을 겨루었다. 이 자리에서 풍물을 치는 것을 보고서 화주가 좌중의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적으로 걸립단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치배는 쇠[3명], 징, 장구[3명], 북, 소고[벅구], 새납으로 편성되었고, 잡색은 포수, 양반, 무동[꽃나비·중나비] 등이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금산의 배걸립굿은 물길을 트는 나룻배의 운용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철저하게 공공성과 호혜의 원리를 근간으로 성립되었다. 특히 천내나루 배걸립굿은 광복 이후 전국 최고의 장구재비로 손꼽히는 최상근과 같은 뛰어난 예인이 배출되어 20세기 금산농악을 이끌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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