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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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身安寺 |
영어공식명칭 | Sina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5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지송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소속 사찰.
[개설]
신안사(身安寺)는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동북쪽에 있는 해발 677m의 신음산(神陰山) 국사봉에서 내려온 지맥의 산록에 자리 잡고 있다.
‘신안사’라는 이름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영국사(寧國寺)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 가끔 들러 유숙하였는데 주위의 경관이 산자수명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또한 고려 때는 공민왕이 찾아와서는 몸과 마음이 쉬어가는 절이라 말할 만큼 역사적으로 유서 깊었던 절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651년(진덕여왕 5)에 승려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583년(진평왕 5)에 무염 선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구(祖丘)가 헌강왕[875~885] 때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가람고』에 각각 현존 사찰로 기록되어 있어 그 무렵에도 존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보석사의 말사가 되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소실되었으나 곧이어 중건되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신안사에는 대광전·극락전·진향각(眞香閣)·요묵당(寥默堂) 등의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즐비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병화로 소실되어 지금은 신안사 극락전[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과 신안사 대광전[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요사채가 남아 있다. 극락전과 대광전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건물로 평가되고 있는 전각으로 화려하게 불전을 장엄한 다포계 양식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두 전각에서 묻어나는 맞배집 특유의 단아함을 보인다. 또한 극락전 남쪽 뒤로 물러선 삼성각이 사우를 이루고 있다.
극락전의 양옆 벽에 그려진 불화 「심우도(尋牛圖)」를 들여다보며 불심을 느끼고, 삶에 지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다. 「심우도」는 ‘동자나 스님이 선(禪)을 수행하여 자기의 본심(本心)을 찾아 깨달음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그림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신안사의 마당 중심에 서 있는 칠층석탑은 금당인 극락전과 일직선상에 있어 당탑가람[법당과 탑을 갖춘 사찰]의 가람 배치[전형적인 사찰 건물의 배치]를 보여준다.
불상은 10기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화로 소실되어, 태고사(太古寺) 등으로 옮겨 봉안되었다. 현재는 5기만 남아 있으나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은 조선 시대 불상의 걸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사찰이 흥할 때는 3,000명의 승려가 수학하였다고 하며, 불경과 불기(佛器) 등 여러 가지 비품이 많았으나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다. 산곡의 경치와 절 앞에 있는 연못과 폭포, 20리에 뻗친 계곡은 경승지로도 유명하다.
2023년 12월 27일 신안사 소장 문화유산 승격 및 지정을 위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관련 문화재]
신안사 대광전(身安寺 大光殿)은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좌문 11.2m, 측면 삼문 6.6m의 규모이다. 지방문화재 지정 당시 건물 앞부분이 매우 파손되고 일부분이 기울어 있고, 부재가 대부분 부식되어 있어 불상을 봉안치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닷집을 위시한 내부 구조와 외형이 고대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를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수하였다고 한다. 대광전은 정면 5간, 측면 3간의 다포식 건축이지만 지붕이 맞배지붕일 뿐만 아니라 건물의 측면에 대하여서도 평절을 짜서 돌리고 홍포를 배치하였다. 건물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후면에 옥내주를 배열하고 3간에는 후불벽과 불단을 조성해서 그 상부에 닷집을 달았다.
신안사 극락전(身安寺 極樂殿)은 1985년 7월 1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극락전은 대광전과 흡사한 규모로 경내에 인접하였다. 이 건물의 구조는 맛배지붕의 다포식 건축이며 측면도 평상을 짜서 돌리고 공포를 배치한 점과 공간포를 한 개씩 둔 점과 공포의 구성도 내외가 동일한 삼출목이어서 3개의 우설은 모두 앙설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점 등이 대광전과 같은 격식을 갖고 있다. 기록이 전해오지 않으므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으며, 건물 뒷부분은 왜정시대에 조잡하게 보수되었다. 옥내에는 불상과 탱화[그림으로 그려서 벽에 거는 불상] 외에 오래된 호형의 목수와 경판이 보존되고 있으나 경판은 소실되어 몇 장만을 보유하고 있다.
금산 신안사 아미타삼존불좌상(錦山 身安寺 阿彌陀三尊佛坐像)은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2007년 10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본존불 좌우에 합장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배치한 아미타삼존불좌상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세세한 장식을 배제하고 불의 등을 풍성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나무로 불상의 원형을 만든 다음 그 위에 흙과 삼베를 입혀 형태를 만들었으며 마지막으로 개금을 하였다. 현존하는 고려 후기의 불상들은 대부분 독존으로 전해지는 것과 비교했을 때, 조선 전기인 16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산 신안사 아미타삼존불좌상은 목심 위에 흙으로 마무리한 제작 기법, 개성적인 얼굴 표현, 합장인의 손 모습 그리고 독창적인 조형성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