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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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顯根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병택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김현근 금산청년회 총무 선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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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김현근 금산푸로청년회 집행 위원 선임 |
성격 | 사회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금산청년회 총무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청년 운동가.
[활동 사항]
김현근(金顯根)은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 출신이다. 동아일보 금산분국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금산청년회 출범 때 총무로 선임되었다. 1921년 금산청년회 주도로 열린 금산유치원창립총회에서 총무로 뽑혀 금산유치원을 설립하는 일에 앞장섰다. 1925년 10월 30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열린 전북청년연합토론회에 금산청년회 대표로 참가하여 ‘무산 청년의 단결’을 주장하였으며, 1926년 성립한 금산푸로청년회[금산무산청년회]의 집행 위원이 되어 지역의 무산 청년 운동을 이끌었다. 푸로청년회란 ‘프롤레타리아청년회’의 줄임말이다.
1920년대 초반 청년 운동은 주로 지역의 지식인 또는 유지 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 운동이 등장하여 전국 각지로 확산하였다. 금산청년회도 이즈음부터 사회주의 성향의 청년회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현근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금산청년회 활동도 이어 나가 1926년 1월에 집행 위원에 뽑혔으며, 교육부 위원으로 청년회 교육 사업도 도맡았다. 금산청년회가 지역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한 금산청년학관의 교사로도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