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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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富介 |
영어공식명칭 | Kim Bug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승훈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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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김부개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군자금 모금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김부개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군자금 모금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0월 29일 - 김부개, 문태서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이원역 습격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2월 13일 - 김부개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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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활동 사항]
김부개(金富介)[1881~?]는 1881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서 태어났으며, 정미의병 당시 문태서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처음 덕유산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은 문태서는 스스로를 ‘호남의병’으로 부르면서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장수 지역 일대로 활동 무대를 확장하였다. 문태서 의병부대는 지금의 장수군 계북면 지역과 덕유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하여 승리하였으며, 1909년 10월 29일에는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에 있는 이원역을 습격하여 일본 경비병 및 일본인을 사살하고 역사와 화물차에 방화하였다.
김부개는 1909년 5월부터 문태서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동료 의병 약 50명과 함께 곤봉 또는 총을 휴대하고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1909년 5월 14일 밤에 충청북도 영동군 양남면 필촌 용산리에 있는 홍관서의 집에 들어가서 의병 군자금 30원을 모집하였다. 5월 17일에는 금산군 부북면 가마곡리 육석여의 집에 가서 의병 군자금으로 엽전 1백 30냥을 모금하였으며, 5월 19일에는 금산군 부동면 어재리의 장재관 집에 가서 엽전 30냥을 모금하였다. 6월 22일 밤에는 부동면 어재리 장사문의 집에 들어가서 엽전 1백 냥을 모금하였다. 1909년 12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는 의병 군자금 모금을 강도 혐의로 규정하고 김부개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부개는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