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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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在禮 |
영어공식명칭 | Jeon Jaeryeo |
이칭/별칭 | 숙화(叔和) |
분야 |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거주한 조선 후기 효자.
[개설]
전재례는 천안 전씨(天安 全氏)의 후손으로 자는 숙화(叔和)이다. 효자로 정려되었으며 충청남도 금산군에 정려각이 남아있다. 전재례는 『금산군읍지(錦山郡邑誌)』 인물조에 수록되어 있으며, 『전암집(典庵集)』의 사우록(師友錄)에도 수록되어 있다. 전재례의 6세손인 전종호 역시 효자로 인정받아 고종 때 가선대부로 추증되었다.
[가계]
전재례의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영평군(寧平君) 전단(全旦)의 15세손이자 금산에 처음 입향한 전충노(全忠老)의 10대손이다. 아버지는 전덕류(全德流)이며, 어머니는 상산 김씨(商山金氏)이다.
[활동 사항]
전재례는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다. 11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막을 짓고 3년간 지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새 한마리가 날아와 함께 곡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봉양함에도 정성을 다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을 얻어 살아있는 꿩을 먹길 원하였으나 구하기 어려운 때에 꿩 한마리가 스스로 날아왔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죽만 먹으면서 3년간 아침 저녁으로 슬퍼하다가 결국 병에 걸려 무덤 앞에서 죽었다.
[학문과 저술]
전재례는 제원역에 유배중이던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총명하여 사서삼경을 일찍 마쳤다.
[묘소]
전재례의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전재례의 소문을 들은 어사 홍택이 임금에게 보고하여 정려되었다. 이에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에 정려각이 건립되었으며,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정려각은 사방에 홍살이 둘러져 있으며, 양옆으로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정려각 내부에는 ‘효자학생전재례지려(孝子學生全在禮之閭)’라고 적힌 명정현판이 걸려 있으며, 그 아래에는 1759년(영조 35)에 작성된 ‘전공재례효행서문(全公在禮孝行序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