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25
한자 權悰
영어공식명칭 Kwon Jong
이칭/별칭 희안(希顔),충민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기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생년 시기/일시 1554년연표보기 - 권종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2년 6월 23일연표보기 - 권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01년 - 권종 정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4년 5월 17일 - 권충민공순절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 권씨
대표 관직 금산군수

[정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조선 전기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안(希顔). 찬성사 권근(權近)의 후손이다. 권종(權悰)[1554~1592]은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권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처음 개령현감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군수로서 금산에 쳐들어오는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하였다.

[가계]

증조할아버지가 권교(權僑)이고, 할아버지는 권적(權勣)이며, 아버지는 살아서 중림찰방(重林察訪)을 역임하고 좌찬성에 증직된 권지(權軹)이다. 어머니는 감역(監役) 박언(朴堰)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임효종(林孝宗)의 딸인 진천 임씨(鎭川 林氏)로 슬하에 권현(權睍), 권춘(權春), 권경(權暻), 권준(權晙) 네 아들을 두었다. 권율(權慄)[1537~1599]이 사촌동생이다.

[활동 사항]

1592년(선조 25) 3월 금산군수로 부임한 권종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촌동생 광주목사 권율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함께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권종은 먼저 병력을 이끌고 충청도관찰사가 있는 공주로 갔는데, 관찰사는 권종이 늙었다는 이유로 거느린 군사를 빼앗고 군량 관리 임무를 맡게 하였다. 하지만 6월 20일 왜군이 이미 옥천에 진입하여 금산까지 빼앗길 기미가 보이자, 권종은 목숨 걸고 금산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200명도 안되는 병력을 모아 금산군 동쪽 오십리 떨어진 강기슭에서 왜적을 기다렸다. 6월 22일 왜군과 싸움을 시작하여 종일토록 싸우다가 23일 오후 기력을 다하여 죽었고, 아들 권준(權晙)도 뒤따라 죽었다.

[묘소]

전투가 끝난 뒤 아들 권현(權晛)이 권종의 시신을 찾아서 포천 선산에 장사지냈다. 현재 위치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고모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5년(선조 38)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금산에 순의비가 세워졌다. 1710년(숙종 36)에 정려가 내려졌으며, 1711년(숙종 37)에 충민(忠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878년(고종 15) 금산 유림이 비를 세웠으나 1941년 일제에 의해 비석의 비문이 뭉개졌었고, 1945년 8·15 광복 후에 다시 세웠고, 1974년 비각을 건립하였다. 현재는 금산향교에서 권종 군수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22일 추모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