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10
한자 吳應鼎
영어공식명칭 Oh Eungjeong
이칭/별칭 완월당,문중,충렬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8년연표보기 - 오응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4년 - 오응정 무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오응정 사망
묘소|단소 오응정 묘소 -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 156-3
사당|배향지 금산 충렬사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10-2 금곡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해주
대표 관직 순천부사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충렬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무신.

[개설]

충청남도 금산군 외에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의 충렬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의 삼세오충렬사에도 배향되었다.

[가계]

본관은 해주이고 증조부는 오석근(吳碩根), 조부는 오식(吳湜)으로 모두 벼슬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오하몽(吳下蒙)은 현감을 지냈으며 형조참판으로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풍양 조씨 조진의 딸이고, 부인은 완산 이씨 이효순의 딸이다.

[활동 사항]

27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비변랑,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군기시첨정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행차가 의주로 피난한다는 말을 듣고 의주로 가서 알현하였다. 선조(宣祖)가 장수로 발탁해 친병으로 호위하게 하였으며 평양성 전투에 수탄장(守灘將)으로 참여하였다.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남방의 요충지인 순천(順天)부사에 임명되었는데 더 이상 수비가 어려워지면서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과 남원으로 후퇴하였다. 1597년 남원성을 지키다가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한 삼세오충렬사(三世五忠烈祠)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가선대부 한성부좌윤으로 증직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에 위치한 충렬사(忠烈祠)오응정과 아들 및 손자를 배향한 사당이다. 후손의 언급에 따르면 충렬사는 1831년(순조 31) 후손과 지역 유림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1956년 본래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현 위치에 복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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