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477
한자 趙憲 關聯 遺品
영어공식명칭 Relics Related to Jo H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의총리 125-1]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8월 1일연표보기 - 조헌 관련 유품 보물 지정
현 소장처 칠백의총관리소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의총리 135-1]지도보기
성격 유물
소유자 국유
관리자 칠백의총관리소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칠백의총관리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의병장 조헌의 유물.

[개설]

조헌 관련 유품(趙憲 關聯 遺品)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이 남긴 유물 6종 7점이다.

[형태]

조헌이 남긴 유품은 『조천일기(朝天日記)』, 조헌의 홍패(紅牌), 의병장 제수 교서, 화살통, 조헌의 문묘종사 교서, 그리고 치제문 두 종이다.

[특징]

『조천일기』는 조헌이 1574년(선조 7) 5월 10일부터 9월 14일까지 명나라 신종(神宗)의 성절사(聖節使)로 북경에 파견되어 다녀오면서 작성한 사행 일기이다. 당시 성절사는 정사(正使) 박희립(朴希立), 서장관(書狀官) 허봉(許篈)으로 구성되었고, 조헌은 질정관(質正官)으로 참여하였다. 질정관이라는 직책은 명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조사하는 관직으로 이후 조헌은 명나라 사정에 대한 여러 글을 남기고 조정에 제언하기도 하였다.

조헌의 문과 급제 교지는 조헌이 1567년(선조 즉위년) 문과에 급제하고 받은 홍패를 말한다. 조헌은 당시 식년시(式年試)에 병과 9인으로 급제하였고, 급제하기 직전에 승사랑(承仕郞) 온성훈도로 재직하였다.

조헌 의병장 제수 교서는 1592년(선조 25) 선조가 조헌을 봉상시첨정으로 임명하면서 한편으로는 의병 활동을 독려하기 위하여 내린 교서이다. 교서는 국왕이 내리는 명령서 혹은 훈유서와 같은 문서로 당시 선조가 의병을 격려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선조는 임진왜란 발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말하고 조헌에게 봉상시첨정을 제수하면서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병 활동에 더욱더 힘써 달라고 당부한다.

화살통은 조헌금산 전투 당시에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유품이다. 재질은 대나무이며 화살통 표면에 학, 거북, 사슴, 수목 등이 양각되어 있다. 제2차 금산 전투 이후 조헌의 동생인 조범(趙範)이 수습하였다고 전해진다.

조헌의 문묘종사 교서는 1883년(고종 20) 고종이 조헌을 문묘에 배향하는 것을 확정하면서 내린 교서이다. 교서에는 조헌이 명나라 사행과 임진왜란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우 오래전부터 문묘종사에 대한 요청이 있었으나 고종 연간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다.

치제문은 두 종이 남아 있다. 하나는 정조의 치제문이고 다른 하나는 순조의 치제문이다. 정조의 치제문은 1795년(정조 19) 12월 정조가 우부승지 유광천을 보내어 조헌에게 내린 치제문이다. 순조의 치제문은 1812년(순조 12) 8월 순조가 서천군수 권행언을 보내어 조헌에게 내린 치제문이다. 당시 서구 세력의 등장에 대비하여 이를 경계하고 조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조헌 관련 유품금산 전투에서 조헌이 행동으로 보인 여러 가지 업적을 당대 혹은 후세에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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