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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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祖大王 胎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1-13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범 |
건립 시기/일시 | 13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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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393년 - 태조대왕 태실 함경도 용연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로 이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28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4월 20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태조대왕 태실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태조대왕 태실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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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태실 |
소유자 | 금산군 |
관리자 | 금산군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실.
[개설]
태조대왕 태실(太祖大王 胎室)은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태(胎)를 안치한 태실이다. 태실이 있는 만인산(萬仞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봉우리가 기이하고 수려한 것이 연꽃과 같다’라고 표현할 만큼 당시에도 명승이었다.
[위치]
태조대왕 태실은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 1-86번지에 있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의견에 따라 본래 함경도 용연(龍淵)에 있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1393년(태조 2)에 전라도 완주군 진동현(珍同縣)으로 옮겼는데, 현재의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이다. 원래 태실이 있던 곳은 중부대학교 왼편에 위치한 계란 모양의 정상부였으나, 이후 지금 자리로 새로 복원하였다.
[변천]
태조대왕 태실에 관련하여 여러 기록들이 전한다. 진산군(珍山郡)의 읍지류를 보면, 태실이 있던 곳은 원래 전추(田秋)라는 사람이 집을 짓고 풍족하게 살던 곳이었다. 전추는 판서 진유의 후손으로 진산 사람 진순도가 이곳을 점복하였다는 소식을 태조가 듣고 기이하게 여기자, 대신과 지관을 파견하여 살펴보도록 하였다. 지관은 만인산에 올라 “봉우리가 매우 아름답다. 이는 만세의 터이다”라고 탄복하였다. 이에 태조는 만인산에 자신의 태를 이전하여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후 태조는 진순도를 임주사에 임명하였고, 전추를 회인현감에 임명하여 땅과 집을 하사하였다. 진동현은 태실이 봉안된 후 지진주사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진산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따르면, 정당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를 보내 양광도와 경상도, 전라도 중에서 태를 봉안할 땅을 찾도록 하였다. 권중화는 땅을 둘러보고 와서 전라도의 진동현에서 길지를 찾았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따라 함경도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진산 지역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또 『숙종실록(肅宗實錄)』에는 1689년(숙종 15) 진산군의 태조대왕 태실이 공주 지역의 경계에 있어 여러 백성들이 함부로 주변 땅을 경작하고 주변에 있는 나무를 베어 가므로, 전라도와 충청도의 감사가 이를 금하도록 하는 내용도 확인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태조대왕 태실을 훼손하여 태 항아리를 창덕궁으로 옮겨 보냈다. 나머지 석비와 석조물은 토지 소유자가 헐어 내어 자기 조상의 묘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남아 있던 석조물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뒤에 수습하여, 원래 자리였던 중부대학교 입구 산봉우리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다시 복원하였다.
[형태]
팔각형으로 돌난간을 두른 정역(淨域) 안에 태실이 있다. 태실은 팔각 원당형(八角 圓堂形)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그 앞에 태실비가 서 있다. 태실비의 앞면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고 새겨 있고, 뒷면에는 ‘강희이십팔년 삼월 이십구일 중건(康熙二十八年 三月 二十九日 重建)’이라고 새겨 있다.
[현황]
태조대왕 태실은 1989년 4월 20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금산군이다. 1993년에 지역 주민들이 남은 석비와 석물을 수습하여 유물 일부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태를 봉안한 이후 만인산은 태봉산이라고도 부른다. 금산군에서 태실공원을 조성하여 지역 주민들이 쉼터로 이용한다. 태조대왕 태실은 17세기 말에 크게 중수되었음에도 일부 부재를 제외하고 조선 초기의 형식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또 조선 건국 직후 최초로 가봉된 태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태실을 연구하는 데 있어 태조대왕 태실의 형식과 특징은 편년 설정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