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454
한자 錦山 縣內里 吉思德 孝子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 560-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56년 - 길사덕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11년 - 길사덕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이후 -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 건립
현 소재지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 560-2 지도보기
성격 효자비
관련 인물 길사덕(吉思德)
크기(높이,너비,두께) 61㎝[비신 높이]|92㎝[비신 폭]|8㎝[비신 두께]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에 있는, 효자 길사덕을 기리는 개항기 효자비.

[개설]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錦山 縣內里 吉思德 孝子碑)는 금산군 지역의 효자 길사덕(吉思德)[1756~1811]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비이다. 길사덕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자는 명윤(明潤), 호는 현촌(賢村)이다. 증조할아버지 길용거(吉龍擧), 할아버지 길경익(吉慶益), 사촌 동생 길사희(吉思羲)과 함께 사효(四孝)로 칭해졌다. 길사덕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봉양하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보면 부모에게 먼저 주고, 모든 일을 부모의 뜻에 따라 처리하였다. 부모가 죽은 후에는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매일 성묘하였다.

[건립 경위]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는 1892년(고종 20)에 길사덕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면서 건립되었다. 구체적인 명정 과정이나 중수 과정은 파악되지 않는다. 초기에는 정려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비석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후면의 정려기를 통해 현재의 효자비가 1908년(순종 2) 이후에 건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치]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금산군 부리면 현내리 560-2번지에 있다. 금산군 부리면의 현내리 마을회관에서 현내리 방면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자리에 있다.

[형태]

전체 높이는 200㎝, 너비는 100㎝이다. 효자비 비신의 높이는 61㎝, 폭은 92㎝, 두께는 8㎝이다.

[금석문]

전면에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길사덕지문(孝子 贈童蒙敎官 朝奉大夫 吉思德之門)’이라는 명문이 새겨 있으며, 후면에는 1908년 반남(潘南) 박영훈(朴泳薰)이 찬한 정려기(旌閭記)가 써 있다.

[현황]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는 정려문 없이 비석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길사덕 사촌 동생인 길사희의 효자비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 길사희 효자비 건너편에는 길사덕의 증조할아버지 길용거, 할아버지 길경익의 정려각이 있다.

[의의와 평가]

금산 현내리 길사덕 효자비는 조선 후기 금산 지역 효자 정려의 형태 및 현황을 보여 주는 유적이며, 조선 후기 금산 지역에 세거하였던 해평 길씨(海平 吉氏)의 활동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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