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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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岩里 山城 |
이칭/별칭 | 대미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대암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윤성호 |
현 소재지 | 대암리 산성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대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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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90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대암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산성.
[위치]
대암리 산성은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대암리 북쪽의 대미산 혹은 성재[425m]로 불리는 산에 있다. 대미성(大美城)이라고도 한다. 성재는 북동쪽의 서대산에서 남서쪽으로 연결된 능선의 봉우리 중 하나로, 금산군 추부면과 금성면의 경계에 해당한다. 성재의 서쪽으로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지나간다.
[형태]
대암리 산성은 성재의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900m 정도이다. 성의 형태는 구부러진 삼각형에 가깝다. 석축 성벽은 북벽을 제외하면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서벽과 남벽은 급경사의 암반에 편축식으로 축조하였으나, 협축식으로 축조한 구간도 일부 확인된다. 체성부의 면석은 장방형 혹은 방형으로 치석하였고, 아래부터 열을 맞추어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면석이 치석되었으나 사비기 백제 산성의 면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체성부의 축조 각도가 완만한 편이며, 기저부에 길이 1.5m의 대형 면석을 설치하고 상부로 갈수록 면석의 크기가 줄어드는 특징도 확인된다. 이러한 축조 방식은 백제의 축성법보다는 후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산성 내부에는 넓은 대지가 여러 곳 확인되는데, 성의 운영과 관련된 건물들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재의 정상부와 성벽이 접하는 곳에 형성된 대지나, 경사가 급한 지점의 축대 시설은 건물지를 조성하기 위한 인위적인 정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상부 북쪽 편에는 둘레 150m, 높이 2.5m의 석축도 확인되는데, 주변 보다 높게 솟아 있어 내성의 형태를 보인다. 내성벽으로 파악할 여지도 없지 않지만, 성의 중심 건물 내지 장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황]
대암리 산성 내부에서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회백색 또는 회청색 경질토기 편과 어골문과 복합문이 타날된 와편이 주로 수습된다.
[의의와 평가]
대암리 산성은 금산군 추부면과 금산읍을 연결하는 교통로와 이격되어 있고, 가시권도 좋지 않다. 그러나 금산 지역 산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고, 방어에 유리한 험준한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입지상의 특징과 규모, 수습된 유물의 양상을 고려하면, 고려 말 이후 왜구 침입 등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된 입보성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