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청년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418
한자 大韓靑年團
영어공식명칭 The Korean Youth Corp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8년 12월연표보기 - 대한청년단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12월 - 국민방위군설치법 공포

[정의]

1948년 정부수립 직후 결성된 우파 청년운동 단체의 충청남도 금산군 지부.

[개설]

대한청년단은 1948년 정부수립 직후 이승만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1948년 12월 우익청년 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산재한 우익 청년 단체를 통합하여 결성한 것이었다. 금산 지역 대한청년단이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금산 지역의 읍·면 단위까지 대한청년단이 조직되었고, 그 중 부리면에서의 활동이 알려져 있다.

[구성]

충청남도 금산군의 대한청년단은 읍·면 단위까지 조직되었다. 그 중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대한청년단 활동이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대한청년단은 이전의 우파 정치운동 단체였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조직과 연속성을 갖고 있었다.

금산군 부리면의 국민회 조직 위원장이었던 양병규가 대한청년단 단장을 맡았고, 대한청년단에서 활동하였던 그의 동생 양은규 역시 국민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부단장은 박태순, 총무는 송경섭, 훈련부장은 박정순이었다.

[변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충청남도 금산군의 대한청년단금산 중앙초등학교에서 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1950년 7월 20일 대전이 인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청년단 지도부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대한청년단을 해산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인 1950년 9월 28일 인민군과 좌파세력이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자 부리면대한청년단이 주축이 된 우파 청년들은 향토방위대를 조직하고 자체 방어를 위해 무장을 하였다. 10월 이후 경찰이 금산군에 들어오자 대한청년단은 경찰과 함께 지서 경비를 하였고, 빨치산의 습격에 대응하여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1950년 12월 ‘국민방위군설치법’의 공포되자 대한청년단은 방위군으로 개편되었으나, 방위군 해산으로 조직의 운영과 활동이 침체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대한청년단 활동도 이때 침체되었다가 해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대한청년단은 남한의 거의 모든 우익 청년단체를 통합하여 결성되었고, 지역의 각 읍·면 단위까지 지부가 결성된 거대한 조직이었으나, 이승만 정권의 기반을 지지하는 정치적 활동에 편향된 활동을 전개함으로서 반공이데올로기 확산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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