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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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獨立促成會 錦山郡支會 |
영어공식명칭 | Korean Independence Promotion Association |
이칭/별칭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금산군지회,금산대한독립촉성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윤희 |
[정의]
1946년 충청남도 금산군에 결성된 우파 정치운동 단체.
[개설]
해방 직후 신탁통치안에 반대하기 위해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 위원회가 통합되어 결성되었고,이후 시·도·군 단위까지 지방조직이 결성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역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반탁운동을 전개하면서 좌익 정치 운동 세력의 확장을 저지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구성과 활동]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금산군지회 위원장은 정해준, 청년부장 조문형, 부녀부장은 윤계옥, 선전부장은 서연수 등이 맡았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금산군지회는 각 읍·면·리까지 국민회를 조직하고 반탁운동을 전개하여 좌파 정치 세력과 대립하였다.
1945년 미군정청은 겔로그리(R.F. Gellogly) 중령을 전라북도지사에 임명하여 금산을 포함한 전라북도의 행정 기능을 장악하였고, 점차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와 갈등을 빚기 시작하였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신탁통치 문제에 관한 의견 수렴에 찬탁 단체만이 참석할 수 있다고 결정하자 좌파 정치 운동 세력은 참석을 전제로 연판장을 받기 시작하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금산군지회는 좌파 정치운동 단체를 공격하여 이들의 활동과 조직을 와해시키는 한편 반탁운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였다.
[변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잠시 정계의 2선으로 물러났다.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가 완전히 결렬되고 한반도 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면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다시 정계 1선에서 1948년 5·10선거의 기반을 다지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총선 결과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을 지냈던 정해준이 청년부장을 지냈던 조문형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의의와 평가]
1946년 신탁통치안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정당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반탁국민운동 추진단체이지만,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이승만 계열의 우익운동조직으로 변화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