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276
한자 聖堂里
영어공식명칭 Seongd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 - 전라북도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 - 전라북도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7.02㎢
가구수 308가구
인구[남/여] 514명[남 271명/여 243명]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법정리.

[개설]

성당리(聖堂里)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 서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병합 때 성덕리와 당산리, 검동 일부를 합치면서 성덕과 당산에서 각각 첫 자를 따서 ‘성당리’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는 진산군의 동이면(東二面) 지역이었다. 1789년(정조 13) 발간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동이면의 검동리와 성덕리가 보이고, 『1872년 지방지도』「진산군지도」에는 동이면 성덕리가 나타난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 때 진산군금산군이 공주부 금산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병합할 때 동일면(東一面)과 동이면 지역을 통합하여 추부면을 개설하고, 동이면의 성덕리에 검동, 당산 등을 합하여 추부면의 법정리인 성당리로 하였다. 1963년 1월 1일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금산군이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당리의 북쪽과 동쪽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상지리와 금산군 군북면 보광리, 남쪽과 서쪽은 추부면서대리, 신평리와 접한다. 금성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미륵재, 가사리산, 삽재, 민재, 주지봉을 지나 서대산을 만들고 여기에서 산줄기 하나가 서쪽으로 흘러 내려 신평리와 경계를 이루며 이어져 광덕산을 만드는 산줄기와, 서대산에서 북서쪽으로 제비봉, 재말재, 닭이봉을 휘돌아 뒷골산을 만들고 추부천으로 들어가는 산줄기 사이에 성당리가 자리한다. 서대산, 닭이봉의 골짜기 물들이 모여 서대천과 추풍천으로 합류하여 추부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현황]

2023년 10월 31일 기준 성당리의 면적은 7.02㎢이며, 308가구, 514명[남자 271명, 여자 2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성당1리[금동], 성당2리[성덕]이다. 산간 지역이지만 들이 많으며, 성당리 서쪽에서 국도 제37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간다. 성당리 안쪽으로 도로가 거미줄같이 많아서 교통이 편리하다. 성당리 금동 동쪽에 강참봉굴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강참봉이 이곳 동굴에서 공부하여 도술을 깨쳤는데 이 도술로 농부들을 희롱하였다. 어느 날 주막의 주모를 놀리려고 이무기로 변신하여 주모에게 덤벼들었다가 술벼락을 맞아 다시 사람으로 변신하지 못하였다. 결국 강참봉은 이 굴로 들어가 살게 되었고, 이후 사람들이 이곳을 ‘강참봉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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