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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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坪村里 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윤성호 |
현 소재지 | 평촌리 산성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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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삼태기식 석축 산성 |
정면 칸수 | 약 68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개설]
평촌리 산성(坪村里 山城)에서 백제 토기, 기와 조각과 함께 고려 시대 기와 조각이 수습되어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운영되었던 산성으로 추정한다. 백제 시기에 평촌리 산성은 두시이현(豆尸伊縣)의 중심 치소로서 군사적·행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중요한 산성이다.
[건립 경위]
평촌리 산성은 백제가 초축하였고, 고려 시대까지 활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위치]
평촌리 산성은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물페기마을을 감싸고 있는 야산[244m] 정상부에 있다. 금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천변과 접한 야산으로, 금산군 부리면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형태]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산의 중간 부분을 감싸는 둘레 약 680m의 삼태기식 석축 산성이다. 성 내부의 경작지를 연결하는 진입로 구간에서 성벽이 절개된 지점이 확인된다. 과거에는 평촌리 산성이 토성으로 분류되었으나, 성벽의 절단면을 통하여 석축 산성임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석축부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지만, 성벽은 장방형과 세장방형(細長方形)으로 다듬은 성돌로 축조하였다.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편축식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성벽 선은 야산의 동쪽 산 중간부를 지나 서쪽으로 향하면서 정상부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서벽 구간은 성 내부 정상부가 서벽까지 이어지는 지형에 해당하는데, 이곳에 평지가 있다.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입지를 본다면 성 내부의 건물 터가 이 지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 터의 유구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북벽 구간을 제외하면 성 외부 능선과 연결되는 지점에 각각 존재하였을 것이다.
[현황]
성벽의 둘레는 금산군 지역에서 마전리 산성, 진산성, 계진리 산성(桂珍里 山城)과 함께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한다. 성 내부에서는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다. 삼국 시대의 승석문 토기(繩席紋 土器) 조각과 기와 조각은 백제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 인근에 있는 평촌리 산성은 두시이현의 중심 치소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산성으로, 백제 두시이현에 이어 고려 시대의 부리현(富利縣)이 폐지되면서 성의 역할도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산성 내에서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과 장수군 일대로 연결되는 주변 교통로가 매우 잘 보여서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