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건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246
한자 宕巾巖
영어공식명칭 Tanggunam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매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강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탕건암」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
관련 지명 탕건암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매곡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가난한 선비|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바위로 변한 선비|출세하지 못한 한(恨)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매곡리에서 탕건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탕건암(宕巾巖)」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매곡리의 자연 마을인 탕건암마을 입구에 있는 탕건 모양을 한 바위의 형성 배경과 관련된 전설이다. 탕건암마을은 4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농촌 지역으로, 금산 김씨(錦山 金氏)가 많이 살고 있다. 탕건암은 탕건바위 또는 서생바위라고도 부른다.

[채록/수집 상황]

「탕건암」은 1992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최문휘의 『여기가 금산이다』 ‘매곡리’면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한 채록 시기와 장소는 확인하기 어렵다. 『여기가 금산이다』는 설화 내용에 저자의 주관적 윤색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조선 시대 세조 때 벼슬하여 이름 높은 집안이 있었는데, 명종 때 정변을 치르고 나서 전라도로 연고지를 옮기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 집안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옛날 벼슬길에 오른 가문이기 때문에 자식들의 교육에 힘썼다. 집안의 가장 똑똑한 한 서생이 벼슬길에 오르는 시험에 합격하여 과거를 치르러 한양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형편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한양길에 올랐는데, 금산 땅의 매곡마을을 지날 즈음에 음식이 떨어져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와중에도 그는 “아니야, 여기는 한양이 아니야.”라고 되뇌였으며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

우연히 그의 시체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묻어 주려 시체를 들었으나 시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쓰러진 장소에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 다음 날 그가 죽은 자리에 바위가 생겨났으며 모양이 탕건을 쓴 사람처럼 생긴 바위였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서생의 넋이 서린 바위라 하여 이 바위를 ‘탕건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거리에서 죽은 그가 죽어서 바위가 된 것이기에 가끔 비가 오는 날에는 “아니야, 여기는 한양이 아니야.”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탕건암」의 주요 모티프는 ‘바위로 변한 선비’, ‘출세하지 못한 한(恨)’ 등이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양반 집안의 사람이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한으로 인해 죽어서도 바위로 현생에 남아 있다는 모티프를 찾아낼 수 있다. 죽은 사람의 넋이 너무나도 간절했기에 죽어서도 바위라는 현물로 이승에 남아 있고자 하는 것이다. 즉, 탕건암을 통하여 당시 금산 땅에서도 벼슬과 교육에 대하여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으며 현재도 탕건암마을이 금산 김씨라 하는 양반 가문의 주거지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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