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의 중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245
한자 倉坪-
영어공식명칭 Jungbawi of Changpye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강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창평의 중바위」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
관련 지명 중바위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외동딸|백제 도령|젊은 중
모티프 유형 백제 부흥군과 신라군의 싸움|죽임을 당한 백제 도령|바위로 변한 중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에서 중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창평의 중바위」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곧 하늘의 벌을 받은 중이 벼락을 맞아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중바위는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창평의 중바위」는 1992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최문휘의 『여기가 금산이다』 ‘창평리’면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한 채록 시기와 장소는 확인하기 어렵다. 『여기가 금산이다』는 설화 내용에 저자의 주관적 윤색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의 부흥을 위한 반란군과 신라군의 싸움이 연속되는 날이었다. 신라군이 창평마을 말무산 아래 농가를 약탈하여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웠다. 한 농가의 외동딸은 식량이 없어 하루 걸러 굶으며 지내자 부모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베를 짜서 장터에 팔아 곡식을 구해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외동딸이 밤을 새우며 베를 짜고 있었는데, 대문 앞에 한 젊은 중이 나타나 곡식을 두고 갔다. 외동딸은 젊은 중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밥을 지어 부모를 배불리 먹였다. 또 곡식이 떨어질 즈음, 젊은 중이 다시 나타나 곡식을 주고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백제 부흥군과 신라군의 전투가 이어지던 와중에 부상자들은 각 마을에서 치료를 해주고 있었는데, 백제의 한 도령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외동딸의 집으로 실려오게 되었다. 외동딸은 백제의 도령을 십여 일 동안 간호하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외동딸과 도령의 사이는 깊어져 갔다. 그러던 중 곡식을 주던 젊은 중이 다시 찾아오더니 외동딸과 도령을 보고 노한 얼굴로 바라보다 사라졌다. 중이 가고 난 후에 신라군이 마을로 쳐들어와 농가를 습격하였다. 외동딸은 백제 도령을 급히 산으로 숨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신라군이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가운데에 젊은 중이 있었다. 젊은 중은 외동딸에게 백제는 이미 멸망하였고 정신을 차리라고 이야기하자 외동딸은 이를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백제 부흥군과 신라군의 전투가 이어졌으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고 하늘에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젊은 중은 외동딸을 등지고 전투를 하고 있는 산으로 올랐다. 외동딸은 산에 숨겨 두었던 백제 도령을 찾으러 갔고 한참 만에 칼을 맞고 쓰러진 도령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 모습 같은 바위를 보고는 조금 전에 젊은 중이 산을 오르다가 하늘의 벼락을 맞고 바위로 변했다고 생각하였다. 외동딸은 도령을 산에 묻고 일생 동안 혼자 살다가 죽었는데, 항시 저주하는 눈으로 바위를 노려보았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여인을 욕심내던 중이 천벌을 받아 변한 바위를 ‘중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창평의 중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백제 부흥군과 신라군의 싸움’, ‘죽임을 당한 백제 도령’, ‘바위로 변한 중’ 등이다. 한 나라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와 이전 왕조의 복권을 지지하는 세력의 다툼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신구(新舊)의 대립 구도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에 한 여인을 흠모하던 중의 모습에 하늘이 노하여 벼락을 내리고 잘못된 마음을 가진 중은 벼락을 맞고 바위로 변하게 되는데, 사람이 바위가 되는 천벌을 통하여 당시 종교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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