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덩이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229
영어공식명칭 Bueongdeongi Gool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강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부엉덩이굴」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
관련 지명 부엉덩이굴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신이담
주요 등장 인물 돌쇠|만복 아버지|만복|부엉이
모티프 유형 지극한 효심|동물의 조력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에서 부엉덩이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부엉덩이굴」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에서 1㎞ 정도 가면 깎아 세운 듯한 벼랑의 명칭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는데, 효심이 지극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한 부엉이가 물질적으로 도와주게 되어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효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부엉덩이굴」은 1992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최문휘의 『여기가 금산이다』 ‘산안리’면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한 채록 시기와 장소는 확인하기 어렵다. 『여기가 금산이다』는 설화 내용에 저자의 주관적 윤색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양반집의 소작농이었던 돌쇠는 홀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다가 그 해 바쳐야 할 도조를 갚지 못하였고 주인집에 불려가 벌을 받게 되었다. 돌쇠는 주인에게 어머니의 병간호로 갚지 못하였으므로 내년에 함께 도조를 바치겠다고 하였으나 주인은 믿지 않고 더욱 주리를 틀어 빼돌린 쌀을 내놓으라 하였다. 돌쇠가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인집 종으로 일하던 만복의 아버지가 뛰어들어 몽둥이를 들고 하인들을 물리치며 돌쇠를 구출해 산으로 도망쳤다. 돌쇠와 만복 아버지가 산속으로 도망치자 주인집은 포리를 풀어 그들을 찾았는데, 나무를 해 대던 만복 아버지는 산길을 잘 알아 들키지 않았다. 이후 만복이 아버지는 돌쇠를 타일러 충청도 섬으로 보내며 어머니를 봉양하라고 설득하고 돌쇠는 어머니를 모시고 떠났다.

포리에게서 도망치던 만복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난 영동 땅을 떠나 금산 땅까지 오게 되었는데, 다리 한 쪽을 못 쓰게 되어 자연스레 자신의 아들인 만복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만복의 나이는 겨우 9살이었지만 아버지를 모시고 산속에 들어가 토굴을 만들고 아버지를 기거하게 하였고 항시 주변을 살피며 아버지를 돌보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쌀밥이 먹고 싶다고 하였는데, 만복의 형편으로는 쌀로 바꿀 마땅한 물건이 없었기에 부엉덩이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부엉이가 죽은 산토끼 5마리를 머리 위에 떨어뜨려주고 가서 덕분에 시장에서 쌀을 구해 아버지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아버지가 먹고 싶은 것들을 부엉이가 갖다 주었지만 만복 아버지의 다리 병세가 더욱 심해져 만복 아버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이후 만복이는 아버지의 효도를 도운 부엉이와 함께 산속에서 지내며 오래오래 살았다고 한다. 이후 만복이가 죽었을 때에는 부엉이가 장사를 지내고 그의 아버지 옆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부엉덩이굴」의 주요 모티프는 ‘지극한 효심’과 ‘동물의 조력’이다. 만복이는 아버지와 함께 산속에서 살며 아픈 아버지를 보살피며 효도하는데, 이러한 효심에 감동한 부엉이가 물질적으로 아들을 도왔고 아들은 부엉이의 도움을 받으며 효도를 할 수 있었다. 이후 만복의 죽음에도 부엉이가 장사를 지냈다고 할 정도로 효심과 부엉이의 존재를 결부시킨다. 결과적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에 있는 부엉덩이굴이라고 불리는 벼랑에 대하여 효심이라는 유교적인 가치와 이를 돕는 부엉이라는 신령적인 존재를 연관시켜 지역적인 가치를 재해석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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