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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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 朴吏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두꺼비바위와 박이방」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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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 「두꺼비바위와 박이방」 『설화 속의 금산』에 수록 |
관련 지명 | 두꺼비바위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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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전설|암석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박이방|아내|심영검 |
모티프 유형 | 암석|어사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서 두꺼비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두꺼비 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 박이방은 두꺼비바위 앞에서 늘 소원을 빌며 신세 한탄을 했다. 박이방의 간절함과 착한 아내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고 박이방은 판서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두꺼비바위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채록/수집 상황]
「두꺼비바위와 박이방」은 1992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최문휘의 『여기가 금산이다』와 1996년 금산문화원에서 발행한 『설화 속의 금산』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가 금산이다』는 설화 내용에 저자의 주관적 윤색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조선 시대 때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골에 박이방이 살았다. 그는 양반의 후손으로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으나 집안이 몰락하여 형편이 몹시 어려웠다. 박이방은 하급 관리 신세가 못마땅하여 자주 술에 취해 살았다. 그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두꺼비바위를 찾아가 소원을 말하며 신세 한탄을 했다. 어느 날 외상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온 박이방은 아내 보기가 미안해서 한양 친구가 찾아와 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거짓이 아닌 척 하기 위해 과거를 준비하는 심영검이라는 친구와 함께 마셨다고 하면서 이름까지 지어서 말했다. 그날부터 착한 아내는 간절히 기도했다. “신령님, 심영검이란 분이 어서 과거에 급제하게 해 주시고 서방님도 벼슬길에 오르게 해 주십시오.” 하며 하루도 기도를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당시 한양에는 심영검이라는 도령이 실제로 있었고 막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이방은 오늘도 술에 취해 두꺼비바위를 찾았다. “내가 한 말이 거짓인 줄도 모르고 아내가 매일 정성을 드리옵니다. 신령님, 저도 이만하면 벼슬살이 할 만하지 않습니까.” 하며 속상한 마음에 두꺼비바위를 마구 쳤다. 그때 “이제 풀릴 때가 됐다. 네가 귀인을 만나서 꼭 잠자는 세상을 깨우게 되리라. 두꺼비는 바삐 가지 않아. 천천히 걸어가지.”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마침 심영검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금산 고을을 살피던 중 누가 이끄는 듯한 느낌이 들어 발걸음 따라 걷다 보니 바위 앞에서 기도 중인 박이방을 보게 되었다. 심영검은 자연스럽게 박이방의 집에 하룻밤을 머무르게 되었고 박이방의 아내는 정성들여 대접했다. 그런데 한밤중에 심영검의 과거 급제를 간절히 기원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박이방과 대화를 나눠본 심영검은 박이방의 학식과 성품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한양에 돌아가자마자 심영검은 박이방을 불러 벼슬길에 오르도록 도왔다. 우연히 지어 낸 이름 석 자의 인연으로 나중에 판서 벼슬까지 오른 박이방은 마장골 두꺼비바위를 가리켜 소망을 들어주는 바위라고 말했다. 두꺼비를 닮아서 이름이 ‘두꺼비바위’였던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박이방의 바위’라 불렀으며 오랫동안 간절하게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라고 믿었다.
[모티프 분석]
「두꺼비바위와 박이방」은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속담을 바탕으로 ‘암석 모티프’, ‘어사 모티프’가 결합되었다. 박이방과 그의 아내처럼 간절한 정성으로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이야기이다. 여기에 주인공이 실재 존재하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앞에서 기도했다는 유래를 밝힘으로써 암석 유래담과 결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