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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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吉再- 不二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1년 - 「길재와 불이리이야기」 『금산군지』2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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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청풍사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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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길재 |
모티프 유형 | 지조|절개|지명 유래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서 길재와 청풍사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청풍사(淸風祠)는 청풍서원을 개설하고 길재(吉再)[1353~1419]의 충절과 도덕을 이을 인물을 양성한 사당이다. 길재는 고려 충신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으로 호는 야은(冶隱)이다. 청풍사가 있는 마을 이름은 원래 ‘부리(富利)’였으나 길재의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불이(不二)’로 고쳤다. ‘불이(不二)’는 두 성의 임금을 섬기지 않았던 길재의 충절을 뜻하는 말이다. 1392년 조선 건국 후 정종 2년에 이방원이 길재를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거절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길재와 불이리이야기」는 2011년 금산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금산군지』2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위치한 청풍서원 내의 청풍사는 고려 말 충신인 길재를 추모하는 사당이다. 야은 길재는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과 함께 고려 충신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이다. 청풍사는 조선왕조 초부터 건립을 추진하다가 1741년(영조 17)에 지방 유림과 군수 민백흥에 의하여 건립되고 길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였다. 청풍사는 금산군에서 가장 오래된 사당이다. 왕조가 바뀐 후 새로운 임금을 섬기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쓴 길재의 뜻을 기리고자 ‘불이사(不二祠)’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일명 ‘불이영당(不二影堂)’이라고도 한다. 불이사는 서원을 개설하고 길재의 충절과 인품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 힘썼다.
1868년 불이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손되었다가 1979년 복원되면서 청풍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청풍’은 청풍명월(淸風明月)에서 따온 말로, ‘맑은 바람’이라는 뜻과 함께 결백하고 온건한 길재의 성격을 이르는 말이다. 길재의 출생지는 선산[현 경상북도 구미시]이다. 그런데 길재를 추모하는 사당이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세워진 인연은 31세의 길재가 금주지사[금주는 지금의 금산군]로 근무하고 있던 아버지 길원진을 따라 금산으로 오면서 시작되었다. 길재는 금산에서 신면의 딸과 혼인하였고 그 이듬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리면에 묘를 쓰고 초막에서 삼년상을 지냈다. 당시 사대부들은 보통 백 일간 시묘살이를 하였으나 길재는 3년 시묘살이의 효시가 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래서 원래 ‘부리(富利)’였던 동네 이름을 길재의 불사이군 정신과 지극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불이(不二)’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길재와 불이리이야기」의 모티프는 ‘지조’, ‘절개’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어도 자신의 뜻을 지키며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던 길재의 불사이군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선조들의 의도가 마을 이름에 반영된 지명 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