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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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客舍-|客死-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객사거리」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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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객사거리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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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도령|여인 |
모티프 유형 | 양반 풍자|지명 유래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 있었던 객사거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객사거리」는 세상물정 모르고 학문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의 보금자리가 아닌 곳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한 도령의 이야기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 객사(客舍)가 있었던 ‘객사거리(客舍-)’가 ‘객사거리(客死-)’로 불리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객사거리」는 1992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최문휘의 『여기가 금산이다』에 수록되어 있다. 설화 내용에 저자의 주관적 윤색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고려 때 금산에 착한 도령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여 세상을 다스려 보겠다는 큰 꿈이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었다. 그는 나이 스물에 과거를 보려고 초봄부터 서둘러 준비했다. 그러나 한양으로 떠나기 전날 그의 집에 도적이 들었다. 종들이 소리를 지르고 집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하였지만 그는 글 읽기에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모르고 새벽녘에야 참상을 알고 통곡했다. 그는 부모님의 삼년상을 치른 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과거 공부를 시작했다. 그 해는 가뭄이 심하여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고 도적떼가 활개 치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는 도적에게 쫓기는 여인을 광 속에 숨겨 준 게 인연이 되어 그 여인과 정이 들고 말았다. 급기야 논밭을 팔아서 그녀가 원하는 주막도 차려 주었다. 밤마다 여인을 만나러 주막에 다니느라 학문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 날 밤 주막에 들어온 도적이 여인을 마구 희롱했으나 그 남자는 도적을 대적할 용기가 없어 뒷방에 숨어 있었다. 도적이 떠난 후 여인은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어요?”라며 그를 흔들었으나, 극도로 긴장했던 그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여인은 거적으로 시체를 덮어두고 떠나버렸다. 세상 경험이 너무 없었던 그는 한 여자 때문에 객사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 이곳을 ‘객사거리(客死-)’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객사거리」는 전국에서 다양하게 전해 내려오는 ‘바보 원님 설화’ 또는 ‘바보 양반 설화’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바보원님이야기」와 「객사거리」의 공통점은 어리석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을 풍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객사거리」는 양반 풍자의 희화성이 훨씬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족이나 이웃이 어떻게 지내는지, 세상 물정에는 신경 쓰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벼슬을 하려는 어리석은 주인공이 결국 객사한다는 이야기에는 관청 건물이 있는 ‘객사(客舍)’ 거리에, 아이러니하게도 집이 아닌 곳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객사(客死)’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양반 희롱 및 양반에 대한 풍자 의도가 재치 있는 언어유희의 방법으로 극대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