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장고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03
한자 蔘場告祀
이칭/별칭 삼장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례|고사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삼장에 제물을 차려 놓고 인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금산 지역은 이미 백제 시대부터 인삼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인삼이나 재배법이 오늘날과 같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금산은 역사 속에서도 인삼의 주산지였다. 금산에서 인삼 재배 농가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다. 이 무렵 일본으로의 수출 및 인삼 수요가 증가하면서 인삼 재배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금산은 우리나라 인삼 재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금산 지역이 인삼 재배의 적지가 된 데에는 지리적 자연환경의 영향도 크게 작용하였다. 인삼 재배의 적지로 반양반음(半陽半陰)을 꼽는데 금산의 지리적 조건이 이에 부합한다고 한다.

1920년대 이후 야산을 일구어 인삼을 재배하는 이들이 많았다. 괭이로 나무뿌리를 캐내고 그 위에 잡초를 베어 거름을 하였다. 거름을 한 뒤에 깊이갈이를 반복적으로 하여 토질을 비옥하게 유도한 뒤 다시 1, 2년을 묵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삼밭을 조성한 뒤 밭에 씨를 뿌렸다. 그리고 이로부터 4~6년 동안 지속적인 관리를 한 뒤 비로소 인삼을 수확하였다. 금산의 경우 대부분 농가에서 4년근 인삼을 생산하므로 최소 4년이 되어야 인삼을 수확할 수 있었다.

인삼은 다른 작물에 비해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고 해충에도 취약하다. 따라서 삼포에 차양막을 설치하여 인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그리고 해충 제거에도 각별하게 관심을 기울인다. 주민들에 따르면 인삼 꼭지로 불리는 뇌두[규범 표기는 노두]는 살아 있는데 뿌리를 캐보면 썩어서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인삼을 심어서 수확하기까지 쉽지 않은 노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삼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속설도 전한다. 또 이러한 인식에서 인삼의 성공적 재배를 기원하며 삼장고사(蔘場告祀)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금산인삼은 백제 시대에 연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양나라 도원경은 백제삼과 고구려삼을 비교하면서 “백제삼은 외양은 작지만 둥글다. 고려[고구려]삼은 외양은 크지만 허하고 약하다.”고 하였다. 도원경이 말한 백제삼은 금산인삼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금산인삼의 역사는 유구하다. 단, 당시에도 인삼 재배와 관련하여 삼장고사가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절차]

금산 지역의 삼장고사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었다. 근래에는 그 사례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지만 1960년대 전후에는 다수의 농가에서 삼장고사를 지냈다. 제의는 음식을 차려 놓고 비손을 하거나 절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주민들의 구술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례 1

봄에 삼의 뇌두에서 싹이 나올 무렵 고사를 지낸다. 흰 시루떡 한 시루와 북어, 과일 등을 삼밭의 입구에 차려 놓는다. 주인이 그 앞에 서서 “삼이 잘 자라게 해 주세요.”와 같은 말을 하며 비손을 한다. 규모가 있는 고사를 지내는 사람은 제물로 돼지머리를 올리기도 한다.

사례 2

이 사례는 인삼을 심은 뒤 지낸 고사이다. 농부가 가래떡과 주과포를 차려 놓고 고사를 지냈다. 축문은 “토지신께 엎드려 빕니다. 이제 삼포에 인삼을 심었습니다. 해충을 막아 주시고 재해를 면하게 해주십시오.”와 같은 내용이다. 시루떡 대신 가래떡을 차려 놓는 것에 대해 ‘인삼이 가래떡처럼 희고 크게 자라 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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