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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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錫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병택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김석균 금산청년회 재무부장 선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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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3년 - 김석균 금산삼업조합 부조합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김석균 금산삼업조합 조합장 선임 |
성격 | 지역 유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금산삼업조합 조합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지역 유지.
[활동 사항]
김석균(金錫均)은 금산공립보통학교[현 금산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금산청년회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금산 지역 상공업자에게 상공업 자금을 융자해 주기 위해 설립된 금산식산조합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1923년에 전국적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민립대학설립기성회 금산지부 재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3년 금산청년회 재무부장으로 뽑힌 후 서무부 위원으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지지 단체였던 국민회에 가입하였으며, 1950년에 치러진 제2대 총선거에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입후보하였다가 낙선하였다. 김석균은 8.75%의 득표율로 임영신, 유진산, 박해준에 이어 4위를 차지하였다. 이후 1953년에 이르러 금산삼업조합 부조합장에 선임되었고, 1955년에는 조합장으로 선출되었다. 1956년에는 도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