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707
한자 申成五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기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연표보기 - 신성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 신성오 황해도 장연군에서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9일 - 신성오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대 선고
추모 시기/일시 2014년연표보기 - 신성오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거주지 - 황해도 장연군 장연면 읍외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성오(申成五)는 1883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황해도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3월 1일에는 서울과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해주, 옹진, 사리원, 황주 등지에서 선언서가 배포되었다. 2일부터는 황주 읍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위운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3월 28일과 4월 10일에는 황해도 지역 대부분에서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황해도 장연군 지역에는 3월 중순부터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여현구(呂鉉九)·강원보(姜元寶)·박영서(朴永瑞)는 3월 11일 장날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황해도 장연군 읍내의 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장연읍 남문 성벽에 독립선언서를 붙이고 11일 읍내 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만세 운동 과정에서 행렬 앞에 있던 사람들이 체포되자 군중들은 경찰서로 달려가 석방을 요구하기도 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해산되었다. 3월 16일에도 읍내 시장에서 300명이 참여한 만세 운동이 벌어졌고, 4월 11일에도 다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37세로 장연군 장연면 읍외리에 거주하던 신성오도 장연군 읍내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4월 2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을 위반하였다는 죄명으로 태(笞) 90대를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신성오는 2014년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https://theme.archives.go.kr/next/indy/viewMain.do)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