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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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榮坤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윤희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6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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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김영곤 군용 열차 전복 계획 수립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몰년 시기/일시 | 1992년 4월 13일![]()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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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학지 | 성동상과학교 - 서울특별시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영곤(金榮坤)[1925~1992]은 192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서울의 성동상과학교에서 『순애보(殉愛譜)』·『흙』 등을 읽고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같은 고향 출신 김태영과 교우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김영곤은 1944년 3~6월 김수동(金水同)의 집에서 김태영 등과 13차례에 걸친 모임을 가지며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하였다. 김영곤 등은 일본 경찰과 식량 공출 담당 직원을 살해하고 철도에 멍석을 깔아 일본군 병력 수송 열차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또 항일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청년들아 단결하자”라는 내용의 벽보를 써 붙이기도 하였다. 만주의 독립군과 연락하여 독립 전쟁을 펼치기 위해 일본군에 입대한 후 전선에서 일본군을 반격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김영곤은 1944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5년 5월 23일 전주지방법원으로부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선고받았다.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8·15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묘소]
김영곤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영곤은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