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88
한자 金聖學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 12월 12일연표보기 - 김성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2년 8월 - 김성학 연산국수동맹 가입
몰년 시기/일시 1945년 3월 15일연표보기 - 김성학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김성학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성학(金聖學)[1920~1945]은 192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에서 태어났다. 1942년 8월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에서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인 연산국수동맹(連山國粹同盟)에 가입하였다. 국수동맹은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었다. 연산국수동맹은 1942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유진귀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단체로, 도쿄의 본부와 구분하기 위해 ‘연산국수동맹’으로 칭하였다. 조직원은 주로 연산면과 향촌면 학생으로 100여 명에 달하였다.

김성학은 1943년 8월 연산국수동맹이 연산-두계 간 터널과 철교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폭발물 구입 자금 마련에 나섰다. 1944년 4월에는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가는 조직원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서 제지당하였고, 이후 요주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 되었다. 1944년 10월에도 같은 조직원 김정문이 입영할 때 연산역에서 ‘독립만세’를 외쳐 제지당하였다. 1944년 12월 15일, 만세 운동 주도 및 주재소 습격용 폭약 구입과 자금 조달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향년 24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김성학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성학은 1991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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