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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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安訥 |
영어공식명칭 | Lee Annul |
이칭/별칭 | 자민(子敏),동악(東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기훈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수를 지냈고 『동악집』을 저술한 조선 후기 문신.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좌의정 이행(李荇)의 증손이다.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는데, 당시의 사회상이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금산군수 시절에는 성곡서원의 창건을 주도하였다.
[가계]
할아버지는 이원정(李元禎)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대호군(大護軍) 이양(李崵)의 딸이다. 재종숙부인 사헌부감찰 이필(李泌)에게 입양됐다. 이식(李植)의 종숙(從叔)이다.
[활동 사항]
1599년 29세에 과거를 보아 정시에 급제하였다. 1601년 31세에 예조·공조 정랑을 거쳐 동래부사, 담양부사, 금산군수, 경주부윤, 강화부사, 함경감사, 공청감사 등 여러 지방 관직과 승지, 예조참판, 예조판서 등 주요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명나라에 사절로 여러 번 다니면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1624년 이괄의 난 때 관망하는 말을 한 죄로 귀양을 다녀왔다. 2년 뒤에 다시 서용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에는 다섯명의 청백리를 선정하는 데에 뽑히기도 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중에도 인조를 호종하였고, 환도한 뒤에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금산 지역 서원 중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사액서원이었던 성곡서원은 이안눌이 1611년 10월부터 1613년 11월까지 금산군수로 재임할 당시 주도하여 창건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안눌은 인조대 영의정을 역임했던 윤방과 신흠으로부터 문장에 큰 솜씨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았을 만큼 명성이 높았다. 『동악집(東岳集)』26권에 4,379수의 방대한 시를 남겼다. 『동악집』10권의 제목이 「錦溪錄」인데, 여기에 이안눌이 금산군수로 재임할 당시 남겼던 시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