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18
한자 丁炫
영어공식명칭 Jeong Hyeon
이칭/별칭 이숙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457년연표보기 - 정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49년 - 이숙재정의비 건립
묘소|단소 정현 묘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두곡1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의성
대표 관직|경력 이조판서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세거하였던 의성 정씨의 입향조이자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으로 압해 정씨에서 분파되었다. 고려 시대 향리(鄕吏) 집안으로 중앙 관직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할아버지는 조선 건국 이후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녹훈된 의성군(義城君) 정영손(丁令孫)이고 아버지는 정맹위(丁孟威)이다. 의성 정씨는 부사공파, 판서공파, 야은공파로 나뉘었는데 충청남도 금산군에 세거한 이들은 정현의 후손인 판서공파로 분류된다.

[활동 사항]

정현의 행적에 관련한 정보는 매우 소략한 기록만 확인된다. 생몰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대략 1300년대 후반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성 정씨 족보 2종에 의하면 정현이 이조판서로 있을 때 병조정랑을 지냈던 조명(趙銘)과 함께 금산에 부처(付處)되었다고 전한다. 정현이 금산으로 유배된 까닭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조명이 부친과 함께 단종의 편에서 정쟁하였다가 유배된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의성 정씨 집안에 전해지기로는, 정현은 금산에 유배된 뒤 금성산에 단을 설치하고 매일 영월을 향해서 단종 복위를 축원하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457년 단종의 사망 소식을 듣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한다. 금산 사람들이 정현을 백이숙제(伯夷叔齊)에 빗대어 ‘이숙재(夷叔齊)’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묘소]

2000년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두곡리 의성 정씨의 묘역에서 발견된 석물과 부부 합장묘 목관을 의성 정씨 집안에서는 정현의 것으로 추정하였다. 2003년 묘비가 발견되면서 정현의 할아버지 정영손의 묘소일 수도 있다는 추정도 제기되었는데 마모로 인해 묘비의 글자를 정확히 판독하기 어려워 누구의 묘소인지 확언하기 어렵다.

[상훈과 추모]

1949년 의성 정씨 문중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황풍리에 이숙재정의비(伯夷叔靖義碑)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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