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07
한자 朴希權
영어공식명칭 Park Huigwon
이칭/별칭 임회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915년 - 박희권 숭모사 배향
사당|배향지 숭모사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길 158[마장리 840]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반남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금산군에 거주하였던 문인.

[개설]

박희권의 행적은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반남박씨삼세충의비(潘南朴氏三世忠義碑) 비문과 이유태(李惟泰)의 『초려집(草廬集)』에 실린 행장(行狀)에 전한다.

[가계]

고려 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반남 박씨 박응주(朴應珠)의 후손이며 도소재(逃召齋) 박힐(朴詰)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교감을 지낸 박두언(朴杜彥)이고 아버지는 진산군수를 지낸 박린(朴麟)이다.

[활동 사항]

경사(經史)에 널리 능통하고 타고난 효성이 있었으며 성리학을 공부하여 도의(道義)가 독실하고 뜻이 정직하여 당시 사람들이 감복하였다고 한다. 을해년(1455)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하자 아버지 박린과 함께 장차 영월로 향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90세인 조모(祖母)가 강하게 만류하여 영월로 가지 못하였다. 북쪽 영월을 향해 통곡하고 영결하였다. 아버지 박린을 모시면서 금산(錦山) 장평(奬坪)에 물러나 지냈다.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이름을 숨기고 세상에 은둔하였으며 단종이 지은 자규시(子規詩)를 외우며 슬퍼하였다.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은 “그 자취로 말하면 비록 육신(六臣)과 같지 않으나 그 마음은 똑같이 귀결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며 박희권을 높이 평가하였다.

[상훈과 추모]

1915년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위치한 숭모사(崇慕祠)에 아버지 박린과 함께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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