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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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詰 |
영어공식명칭 | Park Hil |
이칭/별칭 | 도소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재영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인.
[개설]
박힐의 행적은 기우만이 지은 반남박씨삼세충의비(潘南朴氏三世忠義碑)의 비문에 전한다.
[가계]
반남 박씨로 고려 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의 6세손이고, 사온직장(司醞直長) 박상취(朴尙聚)의 아들이다. 공민왕 대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을 지낸 박상충(朴尙衷)은 박힐의 큰아버지다. 박힐의 증손은 진산군수를 지낸 박린(朴麟)이다.
[활동 사항]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문장(文章)과 도의(道義)가 세상에 크게 쓰일 만하였으나 은거하여 시세(時世)가 맑아지길 기다렸다. 고려가 멸망하자 망국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당시 사람들이 백이(伯夷)와 중련(仲連)에 비견하였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서로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벼슬을 주기 위해 여러 차례 불렀으나 금산(錦山)의 골짜기에 은거하면서 나가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1915년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 위치한 숭모사(崇慕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