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80
한자 海州 吳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43년연표보기 - 오유종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00년연표보기 - 오유종 사망
입향지 해주 오씨 입향지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해주 오씨 행정공파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성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오현보(吳賢輔)
입향 시조 오유종(吳有終)

[정의]

오인유와 오현보를 시조로 하고, 오유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금산군의 해주 오씨(海州 吳氏) 입향조는 오유종(吳有終)[1443~1500]이다. 오유종은 1466년(세조 12) 생원시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한 후 전라도관찰사를 지냈고,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진산에 부처된 후 후손들이 이곳에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연원]

해주 오씨는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모시는 경파(京派)와 오현보(吳賢輔)를 시조로 모시는 향파(鄕派)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해주 오씨는 모든 오씨의 큰 집이라고 할 만큼 많은 인물이 나온 명문가이다. 오인유의 14세손 오윤겸(吳允謙)과 오정방(吳定邦)의 후예들에서 현달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오윤겸은 인조(仁祖) 대에 영의정에 올랐고, 오윤겸의 현손 오명항(吳命恒)은 우의정에 올랐다. 오인유의 19세손 오원(吳瑗)과 20세손 오재순(吳載純)은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해주 오씨는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상신(相臣) 2명, 대제학 3명, 공신 2명, 청백리 1명 등 현신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가 100여 명이나 나왔다고 한다.

[입향 경위]

해주 오씨가 금산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도 알려진 오국헌(吳國獻)[1599~1672]의 5대조인 오유종부터이다. 오유종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던 오고(吳考)의 둘째 아들로 1466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천거로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를 지냈다. 오유종은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진산으로 귀향을 오게 되었고, 진산 동쪽인 지금의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 정자를 짓고 그 주위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금산군에 살고 있는 해주 오씨는 833명이다.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해주 오씨 행정공파 집성촌이 있다.

[관련 인물]

해주 오씨 금산군 입향조 오유종의 5세손인 오국헌의 자는 중현(中賢), 호는 어은(漁隱)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국승(國乘)에 기록되었으며, 1888년(고종25)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가증(加贈)되었다. 아들 오달휘(吳達輝)·오연휘(吳延輝)·오수휘(吳遂輝)·오일휘(吳逸輝)·오건휘(吳建輝) 5형제와 손자 오석규(吳碩奎), 후손 오태증(吳泰增)·오태준(吳泰俊)도 효행으로 명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904년(고종 41) 해주 오씨 9효자를 함께 모신 정려를 건립하였는데, 금산 요광리 오국헌 정려(錦山 要光里 吳國獻 旌閭)이다. 구효정려라고도 부른다.

[관련 유적]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금산 요광리 오국헌 정려가 있고, 추부면 마전리에 2002년 건립한 오유정의 재실인 행모재(杏慕齋)와 오유정 신도비가 있다. 또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해주 오씨의 4충신을 배향한 문중 사우인 금산 충렬사(錦山 忠烈祠)[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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