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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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溫陽 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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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84년![]() |
입향지 | 온양 이씨 입향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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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온양 이씨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 |
묘소|세장지 | 이만립 묘소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 |
성씨 시조 | 이흥서(李興瑞) |
입향 시조 | 이만립(李萬立) |
[정의]
이흥서를 시조로 하고, 이만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온양 이씨(溫陽李氏) 금산군 입향조는 시조 이흥서(李興瑞)의 3세손인 이만립(李萬立)[1606~1684]이다. 이만립은 노년에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 지금의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로 이거하였다고 한다. 하신리에 온양 이씨 집성촌이 있다.
[연원]
온양 이씨의 시조는 조선 선조(宣祖) 때 옥천군수였던 이흥서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하였다. 선계(先系)는 문헌이 실전(失傳)되어 미상이며, 손자 이만립이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알았으나 역시 선대(先代)를 알 수 없어 이흥서를 시조로 삼고 관향을 온양(溫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온양 이씨 족보에 따르면, 이흥서의 3세손인 이만립이 노년에 산수가 좋은 곳을 찾던 중 금산 신곡[현 금성면 하신리]으로 이주하였고, 이후로 후손들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온양 이씨는 전국에 3,002명이 있으며, 금산군에는 208명이 살고 있다.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에 온양 이씨 집성촌이 있다. 금산군 입향조 이만립의 묘소가 신곡 대장산[현 하신리 대장골]에 있다.
[관련 유적]
조선 숙종(肅宗) 때 이태귀(李泰貴)와 헌종(憲宗) 때 이흥엽(李興爗)의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정려(旌閭)와 삼효문(三孝門)이 세워졌다. 이후 1924년 금산 지방 유림들이 온양 이씨 이태귀와 이흥엽, 이원배(李元培)의 효행을 표창해 줄 것을 청하는 천장(薦狀)을 올리자, 1925년 3월 순종이 친히 ‘온양이씨계효지비(溫陽李氏繼孝之碑)’라는 어필을 하사하였다. 이에 이원배가 하신리에 어필비(御筆碑)를 세우고 어필각을 세웠는데, 이것이 온양이씨어필각(溫陽李氏御筆閣)이다. 온양이씨어필각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