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468
한자 陶窯址
영어공식명칭 The Ruins of a Pottery Kiln
이칭/별칭 요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규완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의 기와, 토기, 도기, 자기 등을 번조(燔造)하는 시설이 있던 곳.

[개설]

흙에 물을 붓고 열을 가하면 단단해진다. 인간은 신석기 시대부터 토기를 만들어 저장에 활용했다. 토기는 흙의 종류, 굽는 방법, 온도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굽는 온도를 올려 좋은 토기를 만들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 가마가 고안되었다. 밀폐된 가마를 만들어 소성 온도를 올려 지속적으로 열을 가하면, 흙에 있던 일부 광물이 유리화되어 단단한 토기를 얻을 수 있다. 처음 노천에 형성되었던 가마터는 초기 국가 시대에 이르러 시설을 갖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연료가 타는 연소실과 그릇이 구워지는 소성실이 구분된 가마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부터 다양한 유형과 모양의 토기가 발견되어 가마 축조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토기를 구워내던 한반도의 가마에서는 10세기 초 기술적 혁신에 의해 자기가 구워지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영향으로 유약기술이 확산되고, 벽돌로 만든 가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가마터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청자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제작이 전문화되었는데, ‘소’나 ‘부곡’ 인근에 가마터가 위치하여 전문 생산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마터에서는 시기별로 유행하는 자기가 출토되는데, 14~16세기 가마터에서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16세기 이후 가마터에서는 백자가 출토되고 있다.

[금산의 가마터]

금산은 그릇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산림과 하천이 많기 때문에, 도자기를 제작하기 위한 가마나 공방을 조성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금산 지역에서는 복수면 지량리, 진산면 지방리·묵산리·삼가리 등에서 가마터와 관련 유물이 수습되었고, 남일면 신동리에서 분청사기, 백자 가마터가 발굴·조사되면서 금산 지역에서 도자기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 확인할 수 있었다.

신동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조선 전기인 15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가마와 공방지가 조사되었다. 국화, 새, 게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분청사기판이 출토되었다.

신동리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에 순백자를 제작하던 가마로 발, 접시, 총자, 잔 등 일상용기를 주로 만들었다. 2기의 가마와 폐기장이 조사되었다. 폐기장에서는 다량의 대접 및 접시와 도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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