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53
한자 鄕·部曲·所
영어공식명칭 Hyang·Bugok·S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문경호

[정의]

고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있었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조선 전기의 기록에 의하면 금산 지역에는 특수 행정 구역으로 6개의 소와 1개의 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향·소·부곡은 지방을 행정적으로 편제한 군현의 하부에 속한 특수 행정 구역이었다. 향과 부곡은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소는 고려 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다. 향과 부곡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면서 국가 또는 관아 소유의 토지를 농사짓는 별도의 역을 부담하였다. 소의 주민들은 금·은·동·철과 같은 광물의 채굴과 제련, 자기·종이·기와·먹·숯 등과 같은 수공업품의 생산, 미역 채취, 생강 재배 등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생산하여 납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형성배경과 처우]

고려 시대의 지방은 크게 군현제 영역과 부곡제 영역으로 구분된다. 군현제 영역은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과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으로 구성되었고, 부곡제 영역은 일반 군현에 비해 다소 낮은 대우를 받은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 생겨난 배경이 명확하지 않으나, 인구가 적어 군현으로 편성하기 어려운 지역, 또는 전쟁에 패배한 지역, 반란을 일으킨 지역, 본래의 군현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정착한 지역 등이 특수행정구역으로 설정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초기의 연구자들은 부곡제 영역에 사는 사람들의 신분이 천민이라고 이해하였으나 근래에는 양인이라는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국가에 조세, 역, 공납을 납부할 의무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반 군현민과 같지만, 일반 군현민에 비해 더 많은 역을 수행하거나 과거 응시, 거주지 이동 등에서는 더 큰 제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산 지역의 향, 소, 부곡]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금산군에 3개의 소가 있었으며, 진산군에 1개의 향과 3개의 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먼저 ‘금산군 고적(古跡)조’에는 군의 남쪽 60여리에 대곡소(大谷所)가 있었고, 군의 남쪽 115리에 안성소(安城所)가 있었으며, 군의 남쪽 1백 20리 지점에는 횡천소(橫川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곡소는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일대이고, 안성소는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일대이다. 횡천소는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일대이다.

‘진산군 고적조’에는 1개의 향과 3개의 소가 기록되어 있다. 원산향(猿山鄕)은 군 동쪽 30리에 있었고, 금악소(金岳所)[또는 金巖所]는 군 동쪽 30리 지점에 있었으며, 동계소(銅界所) 군 북쪽 15리 지점에 있었다. 그 외에도 횡정소(橫程所)가 있었으나 소재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원산향은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자부리 남산마을 일대로 추정된다.『여지도서』에는 원산향의 옛터가 진산현의 동쪽 30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악소는 원산향과 같이 군 동쪽 30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역시 현재의 추부면 일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동계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백암리의 운하산 일대이다. 전언에 따르면 옛날에 운하산에서 구리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구리산이라고도 불렀으며, 동계소의 옛터였다고 한다.

[변화]

부곡제 영역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으나 각각의 토성을 가진 향리들이 있었으므로 지방관들은 향리들을 매개로 특수 행정 구역의 주민들을 간접 지배하였다. 따라서 일반 농민들에 비해 중앙과 지방 세력의 침탈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무신정권기에 공주 명학소의 농민들이 봉기한 것도 그러한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무신정권기와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향·소·부곡은 점차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거나 폐지되었다. 15세기에 제작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모두 고적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통해 금산군에 있었던 향, 소, 부곡 역시 고려 말 조선 초에 폐지되어 일반 군현으로 승격하거나 소속 군현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곡소는 본래 금산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에 무주군으로 편입되었으며, 안성소는 전라도 금산군에 속하였으나 적상산에 사고가 설치되어 무주가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무주에 속하게 되었다. 횡천소는 조선 후기에 횡천면이 되었다가 1914년에 설천면이 설치될 때 풍서면, 신풍면과 함께 통합되어 설천면이 되었다. 그 외의 지역 역시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치면서 일반 행정 구역으로 승격되거나 주변의 군현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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