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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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山 桂珍里 山城 |
이칭/별칭 | 횡당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계진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성호 |
현 소재지 | 금산 계진리 산성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계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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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85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계진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산성.
[위치]
계진리 산성은 횡당산성이라고도 하며,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계진리의 남쪽에 있는 성재[240m]에 자리한다. 조종산이라고도 불리는 성재는 분지 내부의 하천과 평야 주변으로 낮게 돌출된 구릉성 야산이라는 입지적 특징을 보인다. 낮은 높이에도 불구하고 금산읍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홍범식군수순절비 방향으로 오르면 계진리 산성에 접근 가능하다.
[형태]
계진리 산성은 성재 정상부와 가지능선 일부를 감싸는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850m이다. 평면은 부정형이며,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다.
[현황]
계진리 산성은 아직 발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성벽이 붕괴되어 기저부와 면석을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전체적인 지형을 고려하면, 편축식으로 성벽을 축조하고 부분적으로 협축식을 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성 내부에는 넓은 대지가 확인되는데, 성의 운영과 관련된 건물 및 시설들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문지는 성벽의 함몰 지점을 근거로 남문지 1개소만 확인 가능하며, 나머지 구간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산성 내부 정상부와 성벽 주변에 다량의 와편이 산포되어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토기 편도 수습된 바 있다. 계진리 산성의 맞은편에 금산읍성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임진왜란기에 계진리 산성이 금산읍성의 피난성으로 재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계진리 산성은 금산읍의 중심에 자리한 산성으로, 교통로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주변 지역 산성과는 차이가 있다. 조선 시대가 중심이 되는 유물의 출토량이 많은 점, 금산읍의 치소인 금산읍성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삼국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금산읍성 축조 이후에 폐기되었다가 임진왜란기에 재사용된 것으로 이해된다. 즉, 계진리 산성은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는 성곽 운영 양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